대법원, 원심 깨고 “사무장이 근로기준법상 사업주” 판결

비(非)의료인이 의사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의 경우, 사무장이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사무장병원이 폐업되면서 해고된 병원 종업원들이 사무장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및 퇴직금 지급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깨고 사무장이 임금 등을 부담해야 한다고 최근 판결했다.

제약회사 근무 경험이 있던 정모씨는 2014년 충남 서천군의 한 건물을 아내 명의로 사들이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 등 의사 2명을 고용해 이씨의 명의로 병원을 열었다. 간호사 등 병원직원들은 병원장인 이씨와 근로계약을 맺고 채용됐다. 사무장 정씨는 ‘총괄이사’라는 직함으로 병원장 이씨의 도장을 소지한 채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이 병원은 1년여만인 2015년 경영난으로 폐업하게 되었고, 병원 건물마저 경매에 넘어가 종업원들은 임금과 퇴직금을 떼이게 되었다.

이들 종업원 16명은 모두 5천여만원에 이르는 임금 등을 받아내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1심과 2심은 비(非)의료인이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개설한 소위 ‘사무장 병원’은 의료법 위반이며, 이에 따라 병원 운영과 관련한 수익과 채무 등은 모두 의사에게 귀속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이유로 “임금 지급의무는 사무장 정씨가 아닌 병원장 이씨에게 있다”며 기각했다.

이에 원고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박왕규 변호사는 상고이유서에서 “사무장 병원의 임금 지급 책임이 의사에게 있는지, 사무장 또는 공동사업자로서 연대하여 존재하는 지 등 하급심에서 각기 달리 판단하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동일한 법률적 판단이 정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무장은 병원의 실경영자로서 임금을 체불하였다는 근로기준법 위반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바 있고, 병원장은 피고용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또한 군산지원과 평택지원에서도 다른 종업원들이 제기한 임금 청구사건에서 사무장에게 임금 지급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또한 박 변호사는 ▲ 사무장 병원 운영 약정이 의료법 위반으로 무효라 하더라도 근로계약까지 무효라고 할 수 없는 점 ▲ 1, 2심처럼 근로자들의 임금 등에 대한 책임을 실제 병원을 운영한 사무장에게는 없다고 한다면 사무장 병원 운영에 대한 위험부담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사무장 병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부각했다.

대법원 제1부(재판장 대법관 김선수·권순일, 주심 대법관 이기택·박정화)은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전주지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비록 병원장 명의로 근로계약이 체결되었지만, 사무장이 실질적으로 원고를 채용하고 업무지시를 내리고 급여를 직접 지급했다”며 “원고와 피고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라 성립되었다”고 판시했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사무장 병원이 폐쇄된 경우에는 사무장이 병원장에게 임금지급 의무를 미루고 잠적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무장에게 임금 및 퇴직금 지급 책임이 인정되어 근로자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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