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신종식 기자) = 일제치하 어린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모진 고생을 하며 세계적인 바이올린 명장으로 이름을 더 날리고 있는 인물이 김천출신이란 사실을 우리 김천시민은 얼마나 있을까?
‘세계적인 바이올린 명장으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진창현(陳昌鉉·74)씨가 일본 나가노(長野)현 기소후쿠시마(木會福島) 쵸(町)로부터 최근 명예시민이 됐다.’는 기사가 지난 10월 30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기관지 민단신문에 실리고 이를 국내 언론이 앞 다투어 보도해 김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어 그 분에 대한 글을 찾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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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진창현 명장
” 난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
– 진창현 선생님의 오늘이 있기까지 숱한 난관이 있었습니다. 만약 진 선생님의 가정환경이 부유했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 곳에 편안히 살았어도 오늘과 같은 크나큰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진창현 : 오늘의 성과는 기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어떤 생물도 조건반사적인 면이 있어, 자기가 놓여 있는 상황에 따라 그 반응도 다릅니다. 저희 집이 부유했다면 저의 개성을 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장인이 되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상황이 나쁘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혹은 사회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2000년 동안 망국의 백성으로서 세계에서 소외와 차별을 당한 유태인들이 인류의 예술·과학·학술·경제 분야에서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들 ‘역경’ 두 글자로 인한 결과입니다. 역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역경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 자신이 다른 수많은 바이올린 제작자들보다 뛰어날 수 있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진창현 :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저는 재일교포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장인들과 다르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일본의 장인들과 똑같은 수준의 지식·기술로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외국인에 배타적인 사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의 특성이 저에게는 오히려 행운이었습니다. 일본의 바이올린 제작자들보다 세 배 더 깊이 생각하고, 세 배 더 실험하고, 세 배 더 연구하고, 잠은 그들보다 3분의 1밖에 자지 않으면서 노력한 결과로 일본 장인보다 두 배 뛰어난 기술을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 애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고 했고, 상상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더 깊이 더 넓게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날카로운 감성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른 장인들보다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찾았다 하더라도 상황이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당장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진창현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저보다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만들고 있는 장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다들 일본인입니다. 이들 중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은 당장 수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러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문제입니다. 벽 앞에서 주저앉으면, 진화론자가 말하듯이 자연도태를 당합니다. 문제는 의지입니다. 의지가 정말로 확고하다면, 성공의 대가를 금전적인 것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돈 버는 것을 우선시하면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물에 대해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되고, 둘째, 대상이 선정되면 그 한 점에 집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 두 요소만 지니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저는 저의 인생경험을 통해 단언할 수 있습니다.
–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어떤 부분입니까?
진창현 : 얼마나 좋은 소리가 나는가 하는 것은 제작자의 손재주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용하게 가끔은 소리가 잘 나는 일도 결코 없습니다. 어떤 수준의 소리가 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물리적 현상에 의존합니다. 이 물리적 현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제작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항상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보편적 법칙을 발견해 나가야 됩니다. 이에는 제작자의 날카로운 감성이 큰 역할을 합니다. 높은 차원의 기술은 논문에서도 볼 수 없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스스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창현 : 성공이라는 용어는 철학적인 단어라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서, 소기의 목적을 성취했을 때, 사람들은 성공했다 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장르에서는 절대적 성취라는 것은 없고, 상대적 성취라는 것은 있습니다. 저에게 성공은, 완벽한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완성했을 때입니다.
저는 성공을 향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인은 물질적 생활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장인은 재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저에게 행복은, 제가 고생하여 창출한 기술로 많은 연주자들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감사와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 진창현 선생님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바이올린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탓하며 도전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창현 : 한국 사회는 아직도 쉽게 성공하려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또 남의 이목을 너무 의식하여, 즉 체면을 중시하여 자기의 개성과 가능성을 마음껏 추구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물론 운명적인 것도 있습니다. 즉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운명적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 후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겠습니까. 한탄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회피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길이 막히고 장벽이 가로놓여 있으면, 자기 힘으로 조금씩이라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벽을 뚫고 빛을 보았을 때의 감격,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고,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은 맛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봅니다.
저는 인생이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이 모험을 싫어하고 계산적인 사고방식으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떤 길도 다 불확실하게 보이고, 꿈과 정열까지도 상실하게 될지 모릅니다. 인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만 너무 집착하면, 앞길이 무서워서 아무 것도 손을 못 댄 채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