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백(1913~1974)은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과 의지,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미술계의 혁신적인 예술경향과 추상미술의 선두주자가 된, 20세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 대한민국 추상미술의 선두주자 김환기 화백 (1913~1974) 환기재단 [환기미술관 소장]

그는 강, 산, 달, 구름 등 우리 자연의 모습과 백자 항아리, 목가구 등 전통 기물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해 민족 정서를 일깨웠으며, 망향(望鄕)의 애틋함과 인간을 향한 흠모를 감동적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한국적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에 접목해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정립한 김 화백은 선명한 민족 정취를 세계인이 공감하는 정제된 조형 언어와 명상적인 색감으로 구현해 뉴욕과 파리 등 세계 예술의 중심지에 이름을 알렸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은 예술성에 버금가는 대중성으로 미술사적 연구와 전시에서만이 아니라 미술 시장에서도 한국 현대 작가로서 최고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멈출 줄 모르는 작업 열과 예술 실험에 대해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낮에 짠 베를 밤이면 풀고 다음 낮에 다시 짜면서 시간을 벌어야 했던” 신화 속여인 페넬로페의 숙명을 하늘로부터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만나랴 1965년 캔버스에 유채145.5*112.1cm(개인소장)

또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관한 한 타협을 거부해 예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혁신적 사고로 새로운 기법에 대한 연구와 시도를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그 흔적을 작품으로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가 청년기인 일본유학 시절부터 미술 전위 운동의 선봉에 서왔던 리의 자연과 골동, 민예품 등 정서를 일깨우는 소재들로서 예술계의 흐름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다.

또 한국의 추상 미술적 선두 주자로서 한국 최초의 미술 동인 모임인 ‘신사실파(新寫實派)’그룹을 만들어 자신들이 추구하는 추상예술의 의도가 사실의 발현을 목적하는 것이며, 추상적 표현의 본래 의도 또한 사실의 새로운 표현임을 명백히 하고자 했다.

그의 혁신적인 조형 실험은 독보적 감수성과 예술적인 기질, 문화에 대한 특별한 안목과 사회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에서 온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김 화백은 작품에 대한 주관과 신조가 분명했으며, 예술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기 드물게 미술 행정가, 교육자로서도 남다른 능력과 소명 의식을 겸비한 화가였던 김환기는 자신이 겪고 있는 시대의 우울을 관조와 유머로 승화시킨 천상의 예술가인 것이다.

그는 한반도 남쪽 끝자락, 작은 섬에서 태어났으며, 15세에 서울의 중동학교에 입학했으나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을 마치고 동경의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서 수학했다.

이어 일본 유학 시절, 청년 김환기는 유럽의 미술 조류들을 설렵하고 돌아와 이미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던 도고 세이지, 후지타츠구시 등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스승들로부터 입체파와 미래파 등 서양의 새로운 미술 경향을 익혔으며, 가장 전위적 미술 운동인 추상미술을 시도했다.

당시 그의 작품들은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보는 시점의 종합적인 복합체로 표현하는 후기입체파적 시도가 보이는 동시에 한국 정서의 발현 의지가 돋보이는 서정 주의적 향기가 짙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실제적인 묘사로서 구상적인 형태의 차원을 넘어선, 내용(주제)과 형식(조형성)의 긴밀한 대화였고 때로는 투쟁이 됐다.

그는 1937년 귀국할 때까지 일본 화단의 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전’ 창립에 관여해 본격 적인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했으며, ‘자유전’ ‘백만회’등을 통해 유영국, 문학수, 이중섭, 이규상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추상미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적 모더니즘을 리드하는 배경이 돼 이 시기 제작된 작품 론도(1938)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 작품 중 하나이며, 대한민국근대문화재로 지정 등록돼 있다.

김 화백은 학업을 마친 후 20여 년 간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 미술 행정가로서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 미술협회 이사장 등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의 현 위치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1956년 현대미술의 메카 파리로 떠나게 된다.

그는 파리에서 머무는 4년간 새로운 예술, 세계적인 예술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예술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화제(畵題)인 고국의 자연 이다..


△ [봄의 소리] 1966년 178x125cm캔버스에 유채, [환기미술관 소장]

이어 단색조의 바탕 위에 자연의 원형으로서의 산 달 강 그리고 새나 사슴 등의 생명체를 구현하는데, 이때 자주 사용되던 청색 계열의 빛깔들은 만물이 생성하는 기원, 생명력의 장(場)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는 한국의 푸른(청靑) 빛깔이 서양의 블루(BIue)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 화백은 파리 체류 시기, 한국의 자연과 전통 기물에서 영감을 구하는 성향이 짙어지는데 이는 서양의 화법에 의식 없이 젖지 않겠다는 결심으로서 자신의 본질을 찾아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 또한 강했다.

이어 30년대에 시도했던 기하학적 추상이나 40년대 한국적인 주제에의 몰입은 50년대에 이르러 보다 정제되고 고양된 절제와 직관적 표출로써 독창적 화면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또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적 요소와 내면의 형이상학적 울림이 재료와 기법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화로운 화합에 이른 조형 결과는 상징성이나 기호 성을 내포한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효과를 갖는다.

사물이나 자연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택하면서도 화면 질서의 내적 자율성에 의지하는 추상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김환기의 표현처럼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詩)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라는 시 정신(詩精神)의 구현을 의미한다.

그는 파리에서 돌아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고 뉴욕에 정착하는 1963년까지 서정적인 추상 화면으로 한국의 고유한 저서를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뉴욕에 도착한 이후로는 보다 다양한 화면구성과 재료, 기법 실험들로 그 어느 시기보다도 풍부한 예술 행로를 보 여 준다.

그는 새로운 표현과 기법에 대한 불굴의 도전 정신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인간 본연에 대한 연민은 자연에서 우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김환기 작품 세계의 전개 과정을 다양한 재료와 획기적인 조형 실험으로써 보여주며, 김환기 예술의 정점으로 안내한다.

신세계의 새로움과 불확신과 불안정은 그에게 충만한 창작 의지와 열정을 자극했음은 물론이며, 제약이나 선입견이 배제된 각종 재료 실험과 다양한 기법의 시도들은 보다 근본적인 것, 보편성을 추구하도록 이끌었고 점차 간결해지는 구도와 고감도의 색감은 압축적인 화면을 구성했다.

김 화백의 절친한 벗이었던 김광섭의 시(時) 구절에서 재목을 붙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와 ‘우주’(1971)등의 작품은 절제되고 통일된 색조의 무수한 단색 톤의 점으로 가득 채워진 전면점화(全面點畵)로서 김환기의 대표작들이다.

그가 혼신의 기를 모아 선을 긋고 점을 찍고 그 점을 하나하나 둘러싸듯 감싸 안기를 반복해 창조해낸 형이상학적 공간은 점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음악적인 울림이 메아리가 되어 숭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산] (1913~1974) 캔버스에 유채, 규격 81x100cm [개인소장]
 

이어 점들은 율동적인 울림으로 화면을 조화롭게 채운 색조의 바다를 이루는데, 그것은 마치 각각의 별들이 발광하며, 운집한 은하계가 또다시 어우러져 우주 공간을 이루는 것처럼 신비롭고 경외로운 아름다움의 결정체를 이룬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그가 바라본 하늘, 우주의 별들이 쏟아내는

빛의 울림, 숲의 호흡이 만들어낸 메아리이며, 뉴욕의 마천루가 뿜어내는 불빛의 음악 같은 야경, 강물처럼 흐르는 자동차 불빛과 그 경관을 바라보며, 떠올렸을 고향과 가족과 친구를 향한 그리움의 애절한 노래 가락이다.


△ 여름밤의 소리1970년 oil on canvas(캔퍼스에 오일) 139×84㎝ [현대미술관 소장]

심연의 색조와 간결한 구성의 절묘한 조화가 빚어내는 우주적 공간, 섬세한 색점의 음영에는 그가 즐겨 그렸던 산 달 구름 같은 구체적인 형상의 표현을 대신해 시공을 초월한 무한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삶에서 이루어진 인연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배어 있다.

그가 선망해온 자연과 꿈에도 그리는 인연과 삶의 여정이 색점의 음영 사이 섬세하게 녹여져 감동의 바다를 이루는 것이며, 200호가 넘는 대형 화폭에 가득한 점들은 구상적 화면에 자주 등장하던 미디엄(Medium)의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나 안으로부터 스며온 듯 엷고 가벼운 물감의 중첩에 싸여 은은한 메아리 같은 여운으로 수묵화의 번짐과 같은 효과를 만든다.

그 가 페널로페(Penelope)가 한 올씩 베를 짜듯 자신의 긴 숙명의 시간들로 한 점 새긴 점들은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증식되어 때론 강렬한 태양의 빛으로 때론 밤하늘 성좌의 명멸하는 독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김 화백이 찍어간 점들은 도시의 불빛이며, 고향의 산천을 날아다니는 반딧불 들이며, 그리운 금수강산에 두고 온,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는 얼굴들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작품 세계의 관조적 시선을 통해 차가운 도시 문명 속에서도 자연과 무한 한 우주적 공간을 향한 내면의 세계를 열어 지순한 시정을 토로하는 예술 표현으로 마음의 울림을 주며 예술의 고결한 성과를 음미하게 하며, 한국인에 가슴에 오롯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