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보은의 달을 맞이하여 찾은 구국의 성지 그때의 함성 지금도 쟁쟁하게 귀에 들리는 듯(전제현) = 흰 구름 하염없이 먼 산을 넘나드는 무더운 초 여름날, 필자는 변화무쌍한 세상사를 뒤로 하고 황악산 아래 장엄(莊嚴)하게 자리잡은 직지사로 발길을 향했다.
인간의 본연 면목은 언어와 문자를 떠나 오직 직관으로 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심오한 묘리를 상징하는 직지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2년 아도 화상(和尙)께서 창건하셨다고 전해오는 유서(由緖)깊은 사찰이다. 절의 위치가 원만하고 수도 도량의 서기(瑞氣)가 항상 그윽하여 사계절 어느 때나 도량을 찾는 전국의 신(信)남 신녀의 참배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약 3만평의 경내(境內)부지위에 웅장하게 건립된 직지사는 54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린 대 가람이다. 천만가지로 어지럽혀진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모운다는 의미를 간직한 일주문을 지나 찰나도 간단없이 선법(善法)을 수호하고 청정도량을 가호하신다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지나면 석존의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 아미타불과 약사여래상을 모신 대웅전의 장엄함에 압도(壓倒)당함을 느꼈다. 장중한 위엄(威嚴)을 지닌 이 대웅전(大雄殿)은 안타깝게도 임란(壬亂)때 소실된 후 다시 건립하였기에 감화(感化) 또한 더 새로웠던 것일까? 대웅전에 높이계신 부처님께서는 무언(無言)의 장광설로 이 어리석은 무명 중생에게 미묘 법문을 설하고 계실 터이다. 여래의 진여(眞如) 법신은 상주(常住)불멸하여 처처에서 법륜을 굴리고 계시건만 무명 중생은 미련하여 깨달치 못하고 허망한 세상사에 탐익(嗿溺)하여 일희일비(一喜一悲) 구차한 생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직지사는 임란의 일대 혼란기에 혜성(彗星)처럼 출현, 구국(救國)의 대열에 앞장서서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이 위태로운 조국을 수호한 사명대사께서 출가득도(得度)하시고 수도정진 하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도 해동제일의 수도 도량에 걸맞게 대도를 타파(打破)한 선문의 대가(大家)이신 관응•녹원 양 거목이 조사 스님으로 상주하시면서 후학(後學)들에게 헌신적 가르침을 내리고 계신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수도 생활에 임하시고 계신 많은 스님은 칼날처럼 엄한 계율을 등불 삼아 용맹정진(精進)하고 계셨다.

직지사의 신행(信行)활동 역시 명실공히 여타 사찰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한다. 직지사 거사림회와 교사 불자회, 불교 청년회, 관음회는 설법전에서 정기 법회를 거행하는 등 무수한 중생들의 마음 밭에 부처님의 종자를 심어온 한국 불교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함에 손색이 없다.
국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천불전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곳.
탐(嗿)•진(瞋)•치(痴) 삼독이 쉴 사이 없이 치성(熾盛)하는 무수한 중생들의 마음 밭에 이타(利他)와 자비의 씨앗을 심어온 청정도량을 뒤로하고 속세로 발길을 돌리는 필자의 마음은 왜 그렇게 쓸쓸 했을까? 허나 사사불성이면 처처 불성이란 성인의 말씀이 계시지 않던가? 언제 어디서나 참된 마음으로 삶에 임한다면 스스로 성품을 도달할 수 있는 인연시절이 도래하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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