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빠지게 일해도 돈이 벌리지 않는다.(전제현) = 요즈음 농촌은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 신음하고 있다. 농민의 대다수가 고령자 여서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는 더욱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한땐 농부들의 희망찬 풍년가가 가는 곳마다 들려오고 소득 면에서도 도시인들의 부러움을 샀던 시절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농촌의 들녘에는 풍년가 대신 트랙터 갱음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난다면, 먼저 달갑지 못한 요소가 그곳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살기 좋은 곳이라면 지옥도 사양치 않고 모여드는 것이 인심 아니던가? 그러나 농촌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정자들의 자세는 진지한 성찰에 입각하여 해결책에 접근하기는커녕 임시 미봉책으로 일관하고만 있다는 것이 도탄에 빠진 농민들의 불만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농민들에게 불신과 상실감을 안겨주어 경쟁하다시피 농촌을 떠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점은 위정자가 각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더욱이 가시적 성과만을 위주로 무리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기능에는 속수무책이며 그 시행착오의 여파는 고스란히 농민의 몫으로 남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지대하다.
농촌 문제의 본질은 땀 흘린 만큼 돈이 벌리지 않는 농민의 당연한 생존적 욕구불만과 세대간 고부간 갈등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전자는 위정자들의 사려 깊지 못한 눈먼 농민 정책에서 연유되었다고 생각되며, 후자는 농민 스스로가 빗어낸 자업자득의 소치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적절한 상황인식에 입각한 정책 구상에는 소극적인 반면, 순박한 농민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기만극에는 과감하여 그 결과 빚더미 속에 짓눌린 농민들의 고충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책임하게 방관해 왔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예컨대 지난 85년에 불어 닥친 송아지 파동이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송아지 사육사업이야 말로 단 시일에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노다지 사업이란 식의 매스컴의 대대적인 홍보를 통하여 농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다려서 대량으로 송아지 수입이 단행되었고, 순진한 농민들은 거액을 대출 받아 뒤질세라 송아지 구입에 급급했다. 송아지가 사육되어 과잉 출하로 인한 엄청난 손해는 정부를 신뢰한 농민에게 돌아온 혹독한 대가였다. 대 농민 송아지 장사는 큰 성과였는지 알 수 없으나 농민들은 결국 노력비는 커녕 사료값도 건지지 못한 체 빚더미에 짓눌리는 신세로 전략되고 말았을 뿐이다.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는 이 땅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 전이며 미래 또한 불확실하여 오늘날 희망의 사각지대가 농촌의 현 주소다. 따라서 요즈음 농촌에서 눈 푸른 젊은이 찾기란 뿔난 토끼 찾기 보다 더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다고 해도 필자의 지나친 역설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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