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후 이라크 통치계획> 23개 부처 친미파로 군정(임경구) = 후세인 정권 붕괴 직후 이라크에 친미 과도정부를 세우려는 미국의 비밀 계획이 현재 쿠웨이트에서 진행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미국의 계획에는 과거 심각한 물의를 빚었던 이라크 인사들이 내각에 기용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친미파 23명으로 내각 구성 예정
1일(현지시간) 영국의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구상하는 이라크 새 정부는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는 23명의 장관으로 이뤄진 내각으로 구성되며, 각 장관은 미국이 지명한 4명의 이라크인 자문관을 거느리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사령관이 ‘해방구’라고 명명한 지역에는 이라크 민간 통치자로 내정된 퇴역장군 제이 가너가 통치하는 임시정부가 세워질 예정이다. 사실상의 군정이다.
이 계획에 따라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기다리는 과도정부의 구성원들이 속속 쿠웨이트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각구성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미국, 특히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수중에 있다. 그러나 월포위츠가 내정한 인사들 중에는 문제가 많은 인물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 정부내에서조차 논란을 빚고 있다.

미 국방부, 경제사기범 찰라비 적극 후원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반후세인 단체인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인 아흐메드 찰라비와 그의 조카를 비롯한 측근들이다.
찰라비는 이라크의 부유한 은행가 가문 출신의 시아파 무슬림으로, 12살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 가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생활했다. 영국 시포드 대학과 미국 MIT대,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70년대 요르단으로 건너가 1977년 요르단 수도 암단에 페트라은행을 세웠다.
그러나 1990년 페트라은행이 수많은 예금주들에게 손실을 끼치며 파산했다. 요르단 법원은 그에게 사기죄를 선언해 중형을 선언했으나 그는 아직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파산한 그는 미국편에 붙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의 저항세력을 조직하기 위해 90년대초 이라크에 잠깐 머물다가 반란에 실패해 영국으로 도망 가야 했다. 망명생활 동안 찰라비는 미국의 재정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미 의회와의 돈독한 관계를 도모해 왔으며, 그 결과 후세인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 중 미 국방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미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그러나 1998년 반후세인 운동에 쓴다는 목적으로 워싱턴으로부터 1억달러를 지원받았으나, 대부분을 자기 주머니로 챙겼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국무부와 CIA는 이에 그를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보고 있으나,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그의 강력한 후원자이다.
찰라비의 가장 약점은 이라크에서 생활한 기간은 거의 없다는 것. 당연히 이라크 내에서도 그의 지지세력은 전무한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단지 체니 부통령이나 럼즈펠드 미국방장관 등과 절친하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계획에는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기를 원했던 찰라비의 희망사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전직 은행장 출신인 찰라비에게 재무부의 자문역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INC 고위관료는 31일 “찰라비가 보좌관 역할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력반발했다. 그는 “INC가 원하는 것은 이라크를 통치할 미국 장관들의 보좌관에 국한된 게 아니다”라며 “미국인의 이라크 내각 통치에 반대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찰라비 세력이 이처럼 강력히 반발하자, 월포위츠 국무 부장관은 찰라비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분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美, 독점적 통치권 재확인
미국의 직접통치계획이 언론에 흘러나오게 된 계기는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전에 대한 영국내 반대 여론과 유럽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전후 복구사업에 유엔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반면 콜린 파월 미 국무부장관은 지난 주 의회에 출석, 후세인 정권의 붕괴 후 미국이 이라크 정부를 통치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다만 국제사회의 충분한 동의와 유엔의 지원아래 추진할 것이며 유엔은 특별협력단 형태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이 전후 이라크 독점을 추진하자 블레어 영국총리의 설 땅은 크게 좁아졌고, 그 결과 미국의 전후 직접통치계획이라는 극비계획이 영국 언론에 흘러나오게 된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이번 이라크전은 여러 모로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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