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현지 미 방송보다 훨씬 처참해
한국 대사관 외면에 분노 외교통상부에 항의예정
(장현주) = ‘바그다드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은 검은 연기뿐만 아니라 이라크 국민들의 통곡과 비탄과 분노가 하늘에 가득합니다. 저는 매우 제한된 조건과 환경속에서 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저의 무능과 무력함에 늘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이라크 국민이 흘리는 피와 통곡의 눈물을 안다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하지만 이는 국민 다수의 뜻을 무시한 것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진정한 국익을 원하는 국민의 힘으로 파병을 반드시 철회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
이라크 바그다드 현지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하고 3일 오전 9시 56분경 KL 865편으로 귀국한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IPT) 배상현(28)씨와 임영신(34)씨는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파병결정과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에 항의하는 뜻으로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공항에 도착한 배씨는 몰려든 취재진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부상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살아들어온 게 부끄럽다. 가진 게 몸뚱아리뿐이라 그런지 부상은 가벼웠고 지금은 건강하다” 고 말했다. 임씨도 달려드는 두 자녀와 포옹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 일행은 애초 국회 파병동의안 통과하기 전에 귀국해 국회앞 시위에 동참하려 했으나 귀국행 비행기편을 구하지 못해서 오늘에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 내려서야 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배씨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라크 현지에서는 ‘인간이기에 여기서 죽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와 편하다는 생각보다 한국인 것이 너무나 챙피하다”는 배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라크반전평화팀 <왼쪽부터>임영신씨와 배상현씨가 인천공항 입국장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시민의신문 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배상현씨가 이라크 현지에서 맡은 임무는 민간인 피해사례, 미국 오폭 증거자료들 모으는 일. 배씨는 IPT회원 25명이 현지에서 병원, 시내, 가정 등지에서 눈으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국내에서 평화 증언, 반전여론을 확산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그는 다시 이라크로 재입국 할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라크 민중들의 희생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배씨에 의하면 현재 이라크는 폭격이 심해서 머리 위엔 검은 먹구름으로 가려져 하늘빛 구경하기가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난 상태여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다. 상가들도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고, 몇 군데 문 열었다 하더라도 진열장에 상품이 거의 없는 상태. 배씨는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은 이라크 민중들이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내곳곳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숨어있고, 탱크·대공포와 같은 무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상태. 더구나 흙으로 된 땅에는 온통 군인들이 참호를 파고 들어가 있어 영화에서나 봄듯한 전쟁장면을 연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상현씨는 이라크의 한 가정을 방문했는데 접대를 위해 그들이 내놓은 빵과 차를 차마 먹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먹은 만큼 이라크인들이 배고플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차마 먹지 못한 것.
그는 “이라크 시내 병원을 방문했는데 척추에 파편이 박혀서 사지가 마비된 아이, 실명이 되어 고통을 호소하는 13살난 어린아이, 특히 한 어린이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말하기도 힘든 상태인데도 자신의 모습을 찍어서 세상에 알려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데 가슴이 아팠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희생자들을 내면서 전쟁을 꼭 해야 하나, 이렇게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면서 있는데, 도대체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거기에 이러한 침략전쟁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얘기에 죄스러운 마음밖에 없다.
입국후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배상현씨<오른쪽>가 이라크 현지의 참상을 이야기 하던 도중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미국의 ‘오폭’으로 민간인 피해 심각
이들은 또 미국의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부시는 군사시설에만 골라서 폭격을 한다고 하지만 오폭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힘들 정도로 민간인 지역에 수시로 폭격이 자행되고 있어서 사상자가 증가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주민들의 폭동을 우려했지만 오히려 폭동은 찾아볼 수 없고 현지 주민들의 반미감정만 드높다.”
암만으로 나와서는 CNN 방송은 꺼버리고 알 자지라 방송을 봐왔다는 배씨는 “알 자지라 방송은 아랍인의 눈으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전했다”며 “전쟁초기 CNN은 후세인이 병원에 숨어 있는 정보가 있다며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이든 학교든 무차별 폭격을 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며 분노를 표했다.
현지에서 IPT 활동가들의 인기는 대단하단다. 활동가들이 바그다드로 진입할 때는 시내에 진입하기 위한 다리를 못 건널 정도로 몰려와 현지 주민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반겼다고 전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IPT 활동가들이 계속 이라크로 향하고 있고 활동가들을 태운 이라크로 들어가는 버스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비전투 공병대를 파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한 이라크인이 임영신씨에게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러고도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항의를 하기도 했단다. 임씨는 “비록 한국정부는 파병을 결의했지만 한국민들은 이런 정부의 결정을 반대하며 진정한 평화를 외치고 있다”고 대답했으나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고 그때 심정을 전했다.
한국대사관 자국민 기본권 보호못해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의 기본권 침해에도 분노를 표시했다. 바그다드 현지에서 통신이 두절돼 한국과의 의사교환이 힘들자 한상진, 유은하, 배상현씨 등은 도움을 얻기 위해 지난달 23, 25일 두차례나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하지만 첫 번째 방문시 그들은 출입조차 거절당했다. IPT의 공식적인 항의와 성명발표 후 외무부가 긴급조치해 두 번째 방문시 입장을 허가 받았으나 이 역시 한사람씩 교대로 들어가야 했고, 도움 받은 것이라고는 쌀 한 봉지를 얻어온 것이 고작이었다고 전한다.
대사관의 한 서기관은 “여기에 자살하려고 왔느냐”는 식의 폭언을 퍼부었고, 요르단 대사관은 ‘파병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향해 “이곳에서의 집회는 불법이다”며 철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임씨와 배씨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신변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외면한 한국 대사관의 외교정책에 대해 명백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빠른 시일내 외교통상부에 서면으로 사건의 경위와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의하면 4월 2일 한국시간으로 오전 8시경(현지시간 새벽 2시) 박기범씨 외 3명이 이라크 바그다드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 현재는 박기범씨 혼자만 현지로 들어간 상태.
“평화위해 한국 국적 포기하겠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배상현씨와 임영신씨는 국적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고,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처럼 이중국적을 갖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민중을 학살하는 침략전쟁에 참여하려는 대한민국의 자국이기주의에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서 국적포기를 한다”고 밝혔다. 향후 이들은 국적포기 수순을 밟아 포기한 후, 이라크 전쟁 반대하는 나라(그게 이라크일 수도 있고)로 망명의 형식이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의 국적포기를 두고 한국내에 논란이 많다는 얘기에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이중국적에 대해서는 한마디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평화를 저버린 정부의 결정에 반해 결정된 일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UN식 난민지원 배제해야
“다 죽여놓고 살아남은 자들 보호하겠다는 유엔식의 난민구호가 얼마나 많은 민중들을 죽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유엔식의 난민보호촌 구제활동이 아니라, 이라크를 잠시 떠났던 현지인들이 다시 이라크로 돌아와 자신들의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을 설립해 줘야 한다. 현지에서 가지고 나온 기록들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한국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부시를 전범재판소에 재소하기 위한 작업을 국제 IPT와 같이 연대해서 준비를 하게 될 거다.”
이들은 이후 국내에서 활동은 이라크 현지의 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현재 한상진씨도 이러한 활동을 위해 재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배씨와 임씨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청와대 항의방문을 해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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