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달구는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운동단체 “아이들 건강 지키고 농업도 보호”(서성룡) =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이 온나라안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조례안 내용을 ‘우리 농산물’로 할 것인지 ‘우수 농산물’로 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국내 최초로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한 나주시와 시의회는 교육부의 재의 요구에 대해 의결 했고, 광주광역시교육위원회도 지난 11월 8일 재심의 요청된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재의결 했다. 또한 조례 심사를 미루어오던 경남교육위원회도 심사를 진행해 조례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조례제정 운동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진행되고 있고, 나주를 비롯한 진주와 창원 남해 고성 거창 합천 거제 등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조례 제정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조례제정운동을 해온 단체들은 지난 11월11일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전국적으로 의원발의나 주민발의 형식으로 조례 제정 운동이 일어나자 뒤늦게 국회의원들도 나서 지방자치단체가 급식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학교급식법 개정을 청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급식조례는 지난 92년 10월 청주시가 전국 최초로 행정정보공개 조례를 시행한 뒤로 정보공개법이 제정됐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거꾸로 법을 개정하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례 제정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외교통상부와 교육부 행자부 등 관계 기관들이 국내 농산물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는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각종 경로를 통해 조례 제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이미 지난 2001년 3월 21일 교육부로 보낸 답변 문서에서 국내산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는 WTO의 내국민대우원칙과 내․외국산간 차별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며 제정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외교통상부는 이러한 기본입장은 전혀 바꾸지 않은채 각 지자체들의 조례 내용을 간섭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에 의한 급식조례 제정을 추진한 전라남도의 경우 교육부와 외교통상부의 압력에 눌려 조례안 내용 중 식재료에 대한 규정을 ‘우리농산물’에서 ‘우수농산물’로 바꾸었다. 역시 주민발의 형식으로 조례 제정을 추진한 진주에서도 시가 조례 내용을 문제삼아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한달이나 끌었다.
지난 8일 만장일치로 재의결한 광주광역시교육위원회는 원안 조항 중, ‘우리 고장 및 인근에서 생산된 농․축․수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학교에 대해 우선 지원한다’는 내용을 ‘우리 우수 농․축․수산물’로 수정 발의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를 보면 조례안에 ’우리‘ 또는 ’국내산 농수산물‘라는 단어를 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북도의회는 거꾸로 ‘우수 농수축산물’로 돼 있던 원안을 ‘전북에서 생산되는 우수 농수축산물’로 수정해 통과시켰다.
전국 각 자치단체마다 주민에 의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 일어나자 정치인들도 뒤늦게 나서서 급식급 개정안을 내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안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급식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되, 지원 대상을 ‘우수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로 하고 있다.
경남급식연대 정원각 집행위원장은 “WTO협정을 이유로 들어 지원대상을 ‘우수농산물’로 한다면 급식의 질을 높이고 우리 농업을 지키자는 애초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 조례 내용에 반드시 우리농산물이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란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룡 기자

“WTO 협정위반 아니다”
-지원법은 보조금 규정으로 다뤄야

학교급식조례안과 관련해 WTO협정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외교통상부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10시 30분 진주시청 소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학교급식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온 진주여성농업인센터 김미영 대표는 “외교통상부가 신격화하고 있는 WTO는 아직 합의문을 채택하지도 못한 상태”라며 조례의 WTO 협정 위반을 미리 예단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난했다.
김씨는 “오는 12월말까지 WTO회원국들은 이행각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세계적으로 WTO 반대 운동이 일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국익을 위해 남을 설득해야 될 사람들이 한번도 국민의 입장에서 서지 않고 우리 농업을 지키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며 외교통상부를 성토했다.
국제관계 전문가나 농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학교급식조례가 WTO협정과는 상관이 없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농림부 김형재 사무관은 지난 9월 학교급식국민운동본부 앞으로 보낸 자료에서 “나주시의 학교급식비 지원제도는 WTO협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급식조례가 모든 학교당국이나 학부형에 대해 국내산 농산물만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지원하는 것으로 WTO 농정협정상의 보조금규정과 관련된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WTO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1930년대 부터 초기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미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만을 먹도록 하는 내용의 급식법을 시행하고 있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급식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급식 재료에 자국 농산물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 시절에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평생 고치기 힘들끼 때문에 어린이들의 급식 재료는 반드시 자국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5일 열린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광주급식조례운동본부 이희한 공동대표는 “급식조례는 처음으로 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해답이 없다.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교육부와 행자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도 조례 제정 운동을 어렵게 하고 있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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