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신종식 기자) = 태풍 루사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경북 김천지역에서 10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재해복구작업에 매달려 온 50대 면사무소 직원이 과로로 숨졌다.
9일 오전 2시경 김천시 부항면 어전2리 길에서 부항면사무소 총무계장 허평(許枰·52·부항면 어전2리·사진)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허씨의 부인 강모씨(52)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許씨는 1969년 부항면사무소에서 말단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 모범공무원으로 내무부장관.도지사.군수 표창을 다섯 차례나 받기도 했다.
허씨가 과로로 숨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8월 인사이동으로 허씨를 제외한 모든 공무원이 바뀌어 부항면의 지리와 내부사정을 아는 사람이 허씨 밖에 없는 상황에서 30일 이후 이날까지 면사무소에서 태풍 피해 집계 등 행정업무를 비롯해 구호물품 접수 및 분배, 응급복
구 현장 지휘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등,
면사무소에서 도보로 20~30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집을 나두고 면사무소 숙직실이나 승용차 등에서 직원들과 함께 새우잠을 자며, 식사도 제대로 챙길 여유없이 동분서주하다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수해복구에 힘쓰다 순직하게 되었다.
고인의 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해 2대에 걸친 살신성인 정신에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다.
직원 이재방(41) 주사보는 “부항면사무소에서만 31년간 일해 온 계장님은 평소성격이 원만하고 일처리가 적극적이어서 부하 직원과 상사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왔고 면사무소를 찾는 면민들이 가장 먼저 그분을 찾을 정도로 주민들의 어려움을자신의 일처럼 보살펴 왔다”고 아쉬워 했다.
이 마을 이장 허태랑(67)씨는 “그 사람은 면사무소 일밖에 몰랐던 사람”이라며 “가족들이 그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許씨의 아들 삼형제와 10명 남짓한 주민들의 눈에도 눈물이 넘쳐 흘렀다.
부항면 어전1리 고인의 자택에 차려진 빈소에는 북어 한마리와 술한잔 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도로복구가 채 되지 않아 유족들은 상복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상태다.
동료 공무원들의 모습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청과 면사무소 소속 공무원들은 거의 전원 복구현장에 매달리고 있어 동료의 빈소에 모습조차 비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수해로 부인이 직접 관리하던 15마지기의 논밭 중 5마지기가 유실됐지만 집의 피해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천시는 11일 許씨의 장례식을 시가 주관해 치르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이후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못하면서 피해상황을 집계.보고하고 도로복구와 구호물자 지급 등의 업무를 도맡느라 누적됐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었을까.
허씨를 제외하고 부항 지리를 잘 아는 공무원이 8월 인사이동으로 부항면 공무원이 없었는 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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