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박원진 기자) =

한ㆍ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지난해 9월21일부터 올 2월24일까지 개최되고 있는 중국 국보전을 다녀왔다.
이 전시물은 중국39개 박물관과 관련연구소가 선정한 국보급 유물 325점으로 중국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두 개의 왕조 한(漢) 당(唐)시대 중국문명 황금기의 정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한나라 문화는 춘추전국시대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중국전통문화의 기본적 양식으로 형성되었고, 당나라 문화는 서역과 동아시아 세계와의 활발한 교류로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전통적이면서도 화려하고 개방적인 중국문화의 특색을 느낄 수가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한(漢)부터 수(隋) 당(唐) 오대(五代) 시기까지 중국문화예술의 발전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한반도에 끼친 문화적, 예술적, 역사적 영향을 알 수 있게 했다.
중국 국보전은 총 네 부분으로 첫 번째 ‘한나라 문화의 전승’ 두 번째 ‘유목문화와 융합’ 세 번째 ‘실크로드의 번영’ ‘네 번째 당의 풍류와 운치’등으로 나누어 전시해 중국문화의 계승과 발전뿐만 아니라 각 민족, 각지역간의 문화교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의 전통을 이어가다
한나라 문화의 화려함을 대표하는 호남성 장사성 마왕퇴에서 출토된 자수견직물 웃옷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비단바탕위에 여러 가지색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다.

감치기 법을 쓴 바느질은 선이 막힘이 없고 자수가 세밀하면서도 땀이 가지런해 당시 유행하던 고급 수제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서안의 한나라 고분에서 발굴된 청동단지에 담긴 약 26kg의 액체는 알콜 0.1% 동 함량 1,800g정도를 함유하고 있는 비취색의 맑고 투명한 술로 생산당시는 매우 상등품이며 원래의 알콜 도수도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유는 현재 생산중인 최고급의 백주도 50년이 지나면 알콜 도수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비취색의 맑은 술을 바라보며 지금 저 술은 어떤 맛이 날까 정말 궁금해졌다.
2,100년 전에 주조된 술을 마셔보면 기분이 괜찮을 것도 같지만 무덤 속 주인이 술친구하자고 하면 도망을 가야하나 아님 대작을 해야 하나 하고 잠깐 어이없는 고민도 해봤다.
흙으로 구워 만든 배가 빵빵한 만삭의 어미돼지는 한나라 도기공예의 진수를 느끼게 만든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한나라 경제의 양릉에서 출토됐다.
장식이 있는 푸르고 둥근 옥기는 중국인들이 우주관을 엿보게 했다. 고대 옥벽은 사용범위가 매우 넓어 제천의식뿐만 아니라 권력계급의 상징으로 부장품으로도 쓰였고 사교계에서 선물이나 증표로 사용되기도 했다.
무덤을 지키는 벽사는 전설속의 신성한 동물로 한나라 때부터 유행했다. 제왕의 능침을 지키는 대형 돌조각에서부터 금이나 옥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왔으며 호랑이 같기도 하고 사자 같기도 한 위협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전시된 벽사는 금조각을 빚어서 만들었고 붉은색마노와 녹송석을 상감해 넣고 몸 표면은 금알갱이를 빼곡이 장식해놓아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빛이 형형한 동한시대의 걸작이다.
청동에다 은실을 상감해 넣은 황소모양의 등은 남경박물원의 대표유물로 실용성과 예술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국보다.
동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의 아홉 번째 아들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한시기 청동공예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황실생활의 호화로운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감숙성 무위시 대한묘에서 발굴된 행차의장 대열은 무덤주인의 위세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수장품 200여개 중 행차의장대열만 100개나 되며 14개조의 의장군용은 기사용, 4개의 창을든기마무사용,4개의 가지창을 든 기마무사용, 도끼차, 주차, 수레차, 손수레차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 가지창은 동한이 주변국을 제압하게 된 결정적인 무기로 세계 10대 무기에 속한다고 한다.

연꽃 무늬청자단지를 보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활발한 교류관계를 엿 볼 수 있었다.
중국남북조시기의 청자, 백자, 혹은 흑자는 주로 백제지역에서 출토되어 대중교섭을 통해 당시 제작된 다양한 도자기들이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고분 등에서 출토된 도기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외도 남조의 장례문화는 백제에 전해져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끼쳐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도굴되지 않고 매장당시의 원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녕왕릉을 참고할 때 무덤입구에 놓인 돌짐승(벽사, 진묘수)을 보아 남조의 영향이 강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목문화와 합쳐지다
진을 멸망시킨 유목민족의 지방정권을 5호16국이라 하였는데 이 가운데 선비족의 북위가 439년 북방을 통일했다. 이시기를 북조라 한다.
북조 시기는 초원문화가 한문화와 융합되어 수와 당이 통일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한 시기이기도하다.
소개된 유물들은 북조의 황족, 외척, 선비, 귀족, 한족 고관,및 그 친속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중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지는 다양한 부장품들은 대부분 중원의 전통문화의 예술적 품격이 서려있다.
유목민족인 만치 금동제 말장식과 말안장, 갑옷 입은 무사상, 말 탄 무사상, 당나귀, 낙타 가축모형 등 기마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출토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채색한 서커스 인물상은 재주를 부리는 잡기도용들이다. 막대를 든 움푹 패인 눈에 높은 코를 보아 서역인임을 알 수 있게 해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명문이 있는 도교조각상은 당시대의 종교관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10살에 요절한 루루공주의 묘에서 출토된 나뭇잎모양의 금제장식과 채색한 무당의 도용은 생전에 많이 아팠던 딸이 저승에서 병이 완쾌되기를 바랐을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실크로드 번영을 열어가다
중국은 비단의 고향이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페르시아와 로마까지의 육로를 연결한 7000km에 달하는 비단길을 개척했다. 이 길을 실크로드라고 불렀고 서한에서 당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ㆍ서양 교류의 교량이었다.
로마의 유리병, 그물무늬 로마유리잔, 페르시아 사산왕조 유리그릇, 등은 당초기까지 로마와 페르시아 사산왕조와 관계가 친밀해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은제봉수병에 조각된 그리스신화의 황금사과이야기는 경제적 교류뿐만이 아니라 문화의 교류 및 정신세계의 교류도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삼국시대 특히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로만 글라스’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에 유입된 확실한 증거물로 신라인들이 서역인들과 직ㆍ간접적인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의 풍류와 운치를 느끼다
당 왕조는 정치 경제를 고도로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의 번영과 강성을 일궈냈다.
당은 유럽 아시아 각 민족의 경제문화교류의 중심지로 위상을 정립해 나가며 방직물, 금ㆍ은기, 도자기제조 공예품등은 외부세계로 전파 각국의 문화요소들과 융합되면서 새로운 양식으로 통합 발전시켰다.
전시물 중 산서성 태원시 우흥묘에서 출토된 백옥 겉 널은 당시 중앙아시아와의 문화교류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물 자료이다. 이 관의 부조 도안은 중앙아시아 소그드인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신앙과 연희, 악무, 수렵, 출행 등의 생활상과 농후한 이국정취와 선명한 사산왕조의 문화적 특색을 담고 있다.
연꽃 무늬금제 그릇이나 장식옥대 등은 중국 북방 금은기 제조의 탁월한 기술력을 보여준다.
말을 키우는 병풍 그림을 보면 동시대인들이 얼마나 말을 사랑하였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도 애완용으로 길렀다는데 애완용말은 꼬리의 털을 모두 잘라내어 뭉툭했음을 병풍 그림을 보아 알 수 있다. 말은 달릴 때 중심을 말꼬리로 잡는다.
닭이 직조된 견직물, 연주문과 꽃무늬견직물, 용무늬 견직물, 사냥하는 장면이 염색된 견직물, 꽃과 새 무늬 견직물 등에서 황금기를 구가하는 당나라 견직물의 직조기술을 알 수 있게 한다.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상’은 이번 전시의 얼굴 마담 격이라 할 수 있다.
상의는 소매가 좁고 연주문으로 장식한 녹색비단옷을 입었고 노란색 숄을 걸쳤다. 붉은색과 노란색 줄무늬로 된 치마를 입었으며 눈썹언저리에 화전을 장식했다 얼굴은 사홍으로 꾸미고 입술은 붉게 뺨에는 보조개를 그려 넣은 전형적인 당나라 여인이다.
짙고 선정적인 화장이 이 시대 화장 문화의 주류였다. 붉은색 분으로 장식하고 화전을 붙이며 보조개를 그리는 것이 당대 여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화장법이었다고 한다. 화전은 주로 매화문양을 즐겨 그렸으며 생화를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사홍은 두 볼과 구렛나루 사이에 선홍색으로 초승달 모양을 그려 넣던 화장법이다.
사홍의 유래는 위나라 문제(조조의아들 조비)가 총애하던 궁녀가 얼굴을 다쳐 흉터가 있었음에도 총애가 식지 않자 궁녀들이 조비의 총애를 얻고자 흉터를 그려 넣은 것이 화장법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당나라시대 미인관은 당삼채 여인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몸매와 얼굴이 풍만하고 단정하며 우아함을 볼 수 있다. 당 현종이 사랑했던 미인 양귀비도 통통했었다고 한다.
봉황머리 모양의 주전자, 백자단지, 박산모양의 향로, 서역 상인상,, 남장여인상, 채색한 토제 장고, 말을 끄는 서역인물상, 고개 숙인말 등의 도기들은 당나라 조소공예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당은 한문화를 계승한다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서남북 각 민족 각 지역 문화의 정화를 흡수 발전시켜나갔다. 거기에 당나라만의 독특하면서도 다원화 된 예술문화를 정착시킴으로서 당의 풍류와 운치를 중국고대 예술사에 새로운 시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중국예술의 걸작품과 놀랄만한 고고학적 보물들을 직접 봄으로써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과 종교, 사회,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고 우리나라 역사에 끼친 영향까지 이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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