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교수) =

클래식 연주가, 특히 성악가로 활동하다 보면 가끔씩 곤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선생님, 클래식 음악은 도무지 재미가 없고 무근 뜻인지도 몰라 졸립기만 해요 대중가요 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을까요?” 이런 애기를 듣고 나면 어떻게 적당한 대답을 해줄까 고민하게 된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클래식 음악은 일부 중산층의 전유물 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필자가 유학을 가기 전만해도 관객이 꽉 찬 음악회를 만나기란 정말 어려웠고 공짜표나 얻으면 겨우 갈까 말까 한 것이 클래식 음악계의 실태였다.
그러니 유럽 여러나라에서 경험한 음악세계는 그야말로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대중문화 그 자체였다. 연일 올려지는 화려한 연주와 그때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관객들의 열의, CD판에 의존하지않고 라이브(Live)의 묘미를 즐기려는 수준 높은 관객들, 그들이 보내는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 그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인들은 얼마나 신명이 날까?
필자가 쾰른(KoIn)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가난한 유학 생활 중에 어렵게 마련한 오페라 티켓을 가지고 쾰른 필하모니 정문 앞에서 그만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거기에 온 관객들은 실로 무도회장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복장으로 필자를 주눅들게 한 것이다. 잠바차림은 커녕 정장의 차림새로도 들어가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 일 이후로 음악회에 갈 때는 최소한 정장을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정치 경제적으로 발전한 서구 사회일수록 공연관람 태도가 문화의식과 더불어 수준 높게 정착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요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 클래식은 놀라울 정도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애호하고, 각종 행사에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심오하고 투명하며,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조금만 정신을 집중하고,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작곡자와 같은 경지는 아닐지라도 곡 속에 담긴 심오한 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생활 속에서, 더욱이 차 한잔과 함께하는 음악의 여유를 즐겨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하의 음악을 들어 보면 저절로 무한한 신앙심이 생겨 날 것이고, 모짜르트의 작품을 들으면 깨끗한 동심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렵다면 차라리 은은한 대금이나 피리 소리는 어떤가? 스산한 가을바람 소리와 더불어 애간장을 녹이는 우리의 가락을 즐겨보는 것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수 백년의 문화 역사 속에서 위대한 예술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그런 음악이야말로 깊은 철학과 신앙이 담겨진 최고의 걸작품들이 아닐까?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노래 부르기를 특히 좋아한다. 이러한 국민정서를 볼 때 노래 부르는 성악가로서 참 신명 나는 일이다. 다른 클래식에 비해 성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도발적인 일부 싸구려 대중 가요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우리 청소년들에게 아름다운 시와 가락이 함께한 우리가곡을 즐겨 부르라고 권하고 싶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이 대중속에 자리잡아 우리 삶에 더욱 영향을 미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클래식 음악인의 분발이 요망되지만,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방송의 인기 있는 클래식 프로그램개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뜻 있는 시민이나 지도층 인사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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