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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심형준 기고
(한길뉴스 외부필진 기자) = 프롤로그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어느 새 8년차가 되었다. 지나간 세월만치나 이 고장 김천도 많이 변했다.
영남 제일 문이라는 것도 서 있고, 시민 대종이라는 것도 만들어 놓았다. 시민 운동장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고, 문화예술회관도 지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 고만고만한 공원이라는 걸 많이도 만들어 놓았으며, 가로에 조그마한 빈틈만 있으면 소나무를 그렇게도 열심히 옮겨 놓았다. 뿐이겠는가?
담장마다 옹벽마다 솔거도 감탄을 금치 못할 벽화를 그려놓아 문화 도시(?)로서 손색없는 치장을 해놓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여기에 김천 대교 건설을 더하면, 민선 8년간의 치적(?)을 거의 열거한 셈이지 싶다.
아참, 또 있다.
6년여 전, ‘역사 바로 세우기’에 열심히 동참한 공적도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때 얼마나 많은 쇠말뚝을 뽑아 냈던가?
일제의 손길이 미친 남산공원 돌계단을 바꾼 것도 빠뜨리면 안 될 것이다.
이쯤 되면 과거 관선시대 목민관들로선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고 않을 수가 없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한데 문제는 과연 김천시가 그 동안 이뤘고, 자랑스러워하는 일련의 일들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실리적인가 하는 데 있다.
언뜻 보면 뭔가 화려하게 많은 일을 해놓은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게 오늘 날 김천시의 참모습이다. 내실은 없고 껍데기 치장에만 힘과 돈을 처발랐다는 말이다. 실로 안타깝고 화가 나고 불행하다 못해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라도 김천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김천시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해온 치적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1, 영남 제일 문
우선 김천시가 그토록 제 일로 내세우는 ‘영남 제일 문’이라는 걸 보자.
김천시가 내놓는 각종 인쇄물마다에 빠지지 않는 자랑거리.
전국민이 고루 다 보아달라고, 적잖은 돈 들여서 서울역 대합실에서 밤낮없이 뻔쩍거리는 ‘영남 제일 문’.
이 ‘영남 제일 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김천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일까? 글쎄올시다(?)
아무튼 그 문은 전주의 ‘호남 제일 문’ 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건축 형태나 발상이 너무 똑 같다. 물론 호남 제일 문을 흉내내었다 해서 잘못 되었다고 할 순 없다. 잘된 것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가 있다.
하지만 어느 지방의 것이 좋고, 그로 인해 관광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하여 여기저기에서 마구잡이로 따라 하자는 생각은 유치하고, 치졸하고, 위험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하겠다.
제주도의 명물인 유채꽃을 흉내내어, 여러 지방에서 유채 밭을 조성하고 있다. 또, 평창에서 메밀꽃을 상품화 한 것을 따라 여기저기 메밀밭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우려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웃한 두 지역이 대게 싸움을 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처럼 어느 특정 지역의 관광 상품을 흉내내다 보면 자칫 본디의 특성마저 죽이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고장의 ‘영남 제일 문’은 매우 문제가 많다.
기왕에 이 고장에 문을 세우고 싶었으면 ‘호남 제일 문’ ‘동대문’ ‘남대문’ 파리의 ‘개선문’, 그 어느 것도 흉내낸 것이 아닌 것으로 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야말로 이 고장 역사성을 고려하고, 이 지역 정서에 맞는, 그리고 시민들의 개성에 어울리는 그런 독창적인 문을 세웠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제일 문’을 본뜬 ‘영남 제일 문’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영남 제일 문’이라는 이름도 여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제일이어야 하고, 최대의 것이어야 하고, 최초의 것이어야 하고 , 유일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김천시 당국자에게 묻고 싶다.
이런 수식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이란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동대구 인터체인지 ‘옆에 영남 제일 관’이 있다.
아마도 문경 세제에 ‘영남 제일 문’ 현판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제일이란 수식어는 잘못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굳이 그리 가치 있을 것도 없는 시멘트 구조물 하나 건조해 놓고 거창하게 ‘제일’이라 강조해야 했을까?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일이란 시간성의 차별을 뜻할 때 쓰여진다. 맨 먼저 세웠다는 의미로서 말이다. 그리고 규모성을 강조 할 때 쓰여진다. 크기가 첫째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냥 ‘영남 문’이라 칭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것도 현재의 자리에선 곤란한 이름이라 않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위치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 자리에 서야 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슨 일이던 명분이 우선시 되어야 하고, 명분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문의 의미와 상징성부터 따져보자.
문은 통로의 기능, 출입 통제 기능, 안팎의 경계 기능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기도 하고, 기념비적 성격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선 이정표 구실도 한다.
그런데 이 문은 이러한 의미성, 기능성, 상징성 등 어느 것 하나 명분이 맞지 않는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니까 세우기 위해 억지로 세운 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고장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잘 안다.
기왕에 그런 문을 세우려면 충북과 경계인 추풍령 고개에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 인지 이로리 엽연초 건조장 아래 ‘영남 제일 문’을 세운 한참 뒤, 추풍령 도계에 희안한 기둥 같은 걸 세워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영남의 제일 관문’이라 써놓았다. 이 또한 무슨 웃음거린지 모르겠다.
하여튼 김천시는 돈 들여서 웃음거리 만드는데 천재적(?)인 데가 있다.
문이 없는데 문이라 써 놓으면 문이란 말인가?
그러면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 곳에나 집이라 써 놓고 자면 집이 되고, 발가벗은 자가 몸에 옷이라고 써 놓으면 옷을 입은 것과 같다는 논리가 아닌가.
이를 김천시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기둥인지 표지판인지 이제라도 알았으면 당장에 철거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외지 사람들이 그걸 보고 김천 시민들을 비웃었을까? 무식하다고 말이다.
사려 깊지 못한 공무원들 때문에 언제까지 시민들이 비웃음을 당해야 할까?
서둘러 철거를 하기 바란다.
어쨌든 이렇다면 김천시 관계자들도 ‘영남 제일 문’이라는 게 위치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 걸 인정한 셈이 된다. 그러면 당초부터 부당성을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천시가 현 자리를 고집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보아진다.
아마도 충북과의 경계에 문을 세우면 교통량이 적어 많은 사람들이 못 본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졸렬하고 유아적인 사고 때문에 김천시는 몇 가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다.
첫째는 문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무엇보다 큰 문제점이라 않을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봉산 대항 양 면민들을 영남권 밖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도 밝혔듯 문의 기능 중에 경계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이 서있는 곳부터 영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 밖 사람들은 영남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된다.(아마 아직껏 김천시 관계자 누구도 생각해 못 하고 있는 일이지 싶다.)
이는 설령 본의가 아니었다 해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봉산 대항 면민들한테 어떤 식으로도 씻지 못할 중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당장에 철거해야 할 문이다.
누구도 봉산 대항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누가 누구 마음대로 봉산 대항을 영남권에서 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더불어 김천시의 면적을 김천시 스스로 축소시킨 것이나 다름 아닌 우(愚)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엄청난 어리석음을 저질러놓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슨 대단한 명작이나 만들어 놓은 듯 자랑스러워하는 시 관계자들의 무식과 무지가 한심하다 못해 분노를 느낀다.
하긴 그 옆에 소공원(?) 같은 걸 만들어 놓고, 경북도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는 뉴스도 나왔지 않은가.
또, 그런 걸 보라고 밤 새워 조명등을 쏘아 전력 낭비에 앞장을 서는 모양새 또한 발상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다.
가뜩이나 심야 전기 부족 현상으로 심야 전기를 사용하는 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때가 아니던가.
이라크 전쟁 후, 전국이 에너지 절약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김천시만 에너지 절약을 외면하고 있는 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시멘트 건조물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있는지?
제발 매사에 어른스럽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2. 시민 대종과 문화 예술회관
나라가 온통 IMF 혹풍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릴 때, 김천시는 무지하달 만큼 여유로웠고 태평스러웠다.
IMF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시민의 종인가 뭔가를 건조한다며 시민을 상대로 모금을 했으니 말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갑작스레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어쩔 줄을 모를 때, 김천 시민만 돈이 남아 돌아갔단 말인가?
도무지 이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종각을 세우고 종을 매달면서, 시민들 모금으로 했으니 괜찮다는 주장을 하는 공무원들을 대하면서 얼마나 혐오스러웠는지 모른다.
재야의 밤에 보신각에서 타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단 말인가.
운동장 너머에 있는 중앙 중학교에도 들릴 것 같지 않는 종은 쳐서 뭣 하는지 모르겠다.
종을 울리지 않아도 반드시 새날은 밝아 온다.
그렇게 그날 밤에 종을 울리고 싶으면, 관내에 있는 사찰과 교회, 성당 등에 협조 공문을 보내 정한 시간에 일제히 종을 울리게 하면 될 것 아니던가?
그 종이 있는 자리도 위치 선정에 무리가 있다. 어차피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건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더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보다 도심 가까이, 그리고 어느 정도는 높이를 유지했어야 했을 것이다. 종소리가 멀리 퍼지는 적정 높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형이나 건물 같은 데 가려선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지 못 한다는 정도는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어쨌거나 그런 것 다 무시하고 그 외진 곳을 고집한 이유는 뭘까?
당초부터 종소리야 퍼지든 말든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도민체전 같은 행사를 의식하여 현 위치를 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럴 때 외지에서 온 사람들한테 ‘봐라, 우리도 종 달아 놓았다.’ 하고 자랑하고픈 유아적 심정이 앞섰을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문화 예술회관 자리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문화 예술회관이라면 시민들이 가며오며 손쉽고 편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드나들며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고 본다. 한데 지금의 문화 예술회관 자리는 그런 의미에서 영 아니지 아닌가?
결국 운동장 입구에 세워 자랑거리로 삼자는 의미에 비중을 두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여튼 ‘영남 제일 문’에 처럼, 건물 외벽에 날마다 그리고 밤새워 꼬박이 조명을 그렇게 비추어야 하는지도 생각 좀 해보자.(이락크 전쟁 중 전국적으로 절전 분위기가 일자 잠시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 같더라만.)
제발 고속도로를 타고 김천을 스쳐 가는 많은 사람들, 열차 편으로 이 고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김천 문화 예술회관이 날마다 밤새워 그 비싼 조명을 받고 있어도 아무도 모른 채 그냥들 지나다닌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게 문화 예술회관이란 걸 알았다고 해도, 그걸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더란 말도 덧붙이고 싶다.
오히려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건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지자제가 되고 군 단위에도 하나 둘 문화 예술회관을 짓는 추세여서 그리 자랑스러워 할 게 못 된다는 말이다.

3. 크고 작은 공원들
민선 시대 이후, 이 고장 김천이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빈자리마다 꾸며놓은 쉼터를 포함한 크고 작은 공원 조성이다.
산소 공급, 휴식 공간, 녹지 확보, 이 세 가지가 공원을 필요로 하는 절대 이유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김천은 인조 공원이 그리 시급한 도시가 아니다. 도심까지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있으니까 말이다.
그 동안 많은 예산 낭비해 가며 여기저기 조성해 놓은 각 공원들이 과연 공원으로서 얼마나 제 구실을 하는지 따져보자.
‘중앙공원’이라던가?
금릉군청이 있던 자리 말이다.
지금 그 자리는 밤마다 소란스러워 주민들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공원이 되고 난 뒤 집 값이 떨어진 건 물론이고, 이사를 가려해도 집이 팔리지를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도심에 그런 공간을 조성해 놓으면, 그렇게 된다는 걸 왜 몰랐단 말인가?
충분히 예측된 문제였다.
지난 해 루사 때 유실이 된 ‘강변 공원’은 정말 제대로 공원 구실을 하고 있는가?
‘조각 공원’이란 것은 제 값어치를 하고 있는가?
직지사 입구에 거액의 예산으로 조성되고 있는 ‘직지 문화 공원’이란 건 또, 뭣 인가?
직지사는 절 자체가 1600여 년을 가꾸어 온 공원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예전처럼 논으로 있어도 공원이요, 포도밭이어도 공원이요, 채소가 심겼어도 공원의 일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고찰 입구에 그런 모습들이 더 친근하고, 더 명찰(名刹) 같은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산소가 부족해 그곳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인가?
쉬어가라고 그곳을 공원화 하는 것인가?
녹지 공간이 부족해 그 자리에 공원을 고집하는 것인가?
정말로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
대항면 복전동 터널 위 지역에선 그곳만큼 넓은 농토도 없다. 아직은 이 나라가 농업국인데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김천시 직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시민들이 부자여서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시 직원들이 예쁘다고 봉급을 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정말로 봉급을 받아도 시민들한테 부끄럽지 않는 공무원인지, 당장 자기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한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공무원인지 반성들을 해봐야 할 것이다.

4. 소나무와 벽화(?)
가로의 쉼터는 그렇다 치고, 시내 도로 중앙 분리대마다 온통 소나무가 줄을 섰다.
소나무는 결코 공해에 강한 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소나무를 왜 그렇게 옮겨다 고생을 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로가 특정인 놀이 공간이 아니잖은가?
이런 장난질 같은 걸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
시가지가 어느 특정인 기호에 의해 가꾸어진다는 건 너무 잘못 되어도 한참은 잘못된 짓으로밖에 보아지지 않는다. 이도 시정,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시의 주인은 바로 시민이다.
이 말이 선거 때, 표 얻기 위해서 하는 구호만은 아님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시의 모든 사업은 시민의 입장에서 계획되고, 시행되어야 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소나무로 인한 비아냥거림이 시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음을 시 직원들도 귀가 있어 들었을 줄 안다. 왜, 이래야 하는가?
편의상 벽화(?)라고 칭하겠다.
김천시 어디를 가든 조잡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림 혹은 모자이크 같은 것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꺼이 돈 들이고 애써서 도시 미관을 망가뜨려 놓은 가장 흉물 같은 흔적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항면 복전동 터널 출입구 쪽 그림이다.
딴엔 무슨 성문 냄새를 내보겠다고 한 것 같다.
기왓장 덮은 돌담장에 나이들은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이런 걸 그림이라 해도 좋은지 모르겠다. 제대로 표현한다면 그림이 아니라, 기림(?)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직지사를 다녀가는 그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부끄럽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이는 그야말로 예산 낭비(?)를 못해 몹시 애썼고, 돈을 버리지 못해 매우 안달한 증표로밖에 볼 수가 없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굴다리마다의 타일 모자이크를 비롯해 담장, 옹벽, 심지어 하천 제방에 붙박아 놓은 호안 블록에까지 빠뜨리지 않고 그림을 그려 놓은 김천시.
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는지?
물이 지나갈 때마다 물걸레로 닦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어처구니가 없는 일임엔 틀림없다 하겠다.
그나마 냇바닥에 물을 그리고, 고기를 그리고, 가재를 그리고, 다슬기를 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대한민국이, 김천시가, 이렇게 부자란 말인가?
행정이란 게 이런 장난이란 말인가?
작금에 김천시가 하는 일련의 사업(?)들이 죄다 이런 식이다.
김천시의 나이가 60세가 다 되었다. 연륜에 걸맞게 어른스러워질 수는 없는지?
많은 의식 있는 시민들이, 김천인이라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한다.
도민체전을 한다고 길에서 보이는 담장마다 되잖은 온갖 장난질 같은 수준의 그림을 마구잡이로 그려 놓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위치에 따라 조건에 따라 그 칠들이 벗겨지기까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이 걸릴 것으로 사료된다. 그 동안 그 흉한 모습은 어떻게 지켜보라는 것인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예산 낭비해 가며 낙서질(?)을 계속할 계획인지 모르겠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벽화 그리기(?)는 그만 두었으면 한다.

5. 김천대교와 역사 바로 세우기
물론 김천대교 개통으로 인해 아랫장터 쪽에 교통 체증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밤마다 가로등을 그렇게 밝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꼭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밝기를 지키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싸구려 유흥업소 조명 같이 품위 없는 분위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게 김천시 관계자들의 안목이고, 수준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6년여 전이지 싶다.
김천시는 당시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어느 지방 보다 열성적이었다.
명당(?)마다에 박혀있는 쇠말뚝을 뽑느라 애를 많이 썼고, 성과도 대단했던 걸로 안다.
그때 김천시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멀쩡한 남산공원 108 돌계단을 들어냈다. 그리고 많은 예산을 들여 돌계단을 다시 놓았다.
남산공원 돌계단을 바꾼 건,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당초의 돌계단이 일제에 의해 놓여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남산공원 자체를 원상복구 했어야 한다고 보아진다. 원래 공원 자리는 산이었다. 그러면 공원에 흙을 쌓아 산을 만들었어야 옳다는 얘기다.
공원을 조성한 주체가 일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원은 그대로 둔 채, 일제 잔재 정리란 이름으로 돌계단만 바꾼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당초 김영삼 정권이 그토록 요란을 떨었던 역사 살리기 사업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헤프닝에 지나지 않았었다. 어찌 일제 잔재가 지금은 헐려 없어진 구 중앙청 건물뿐이겠는가?
서울역 건물을 비롯한 전국의 간이역사 대부분이 아직도 일제의 잔재로 버젓이 남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경인선, 경부선, 호남선, 충북선, 장항선, 전라선, 경춘선 중앙선 등 대부분의 철도는 일제에 의해 놓여졌다. 주요 국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영삼 정권은 당장에 필요하고, 돈이 많이 드는 일제 잔재는 청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천시도 만찬가지였었다.
공원은 그냥 둔 채, 만만한 돌계단만 바꾸었다는 건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 처사였다고 생각된다. 당초에 놓였던 돌계단을 일본에서 가져왔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땅에 있는 우리 돌로 다듬어 깔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사 현장 감독까진 몰라도, 실제 돌을 옮기고 깐 일반 노동자는 우리 조상들이었지 싶다. 과연 이래도 그 돌계단이 일제 잔재란 이름에 떠밀려 났어야 했는가?
어찌 구 중앙청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고 일제 36년의 몸서리나는 역사가 상쇄될 것이며, 김천 남산공원 돌계단을 거둬냈다고 일제의 지배 역사가 없었던 걸로 될 것인가?
외국의 경우 전쟁의 상흔들을 교육의 증표로 활용하고, 심지어 관광 상품으로 써 먹는 나라들이 있지 않는가.
마치 뒤늦게 독립군이라도 된 양 설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일단 흘러간 세월을 거슬릴 수 없듯이, 역사란 잉크 자국을 지우듯 그렇게 수정할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돌계단들의 행방이다.
현대의 기술과 첨단 장비를 이용해 가공 축조해 놓은 지금의 계단보다 원래의 것이 훨씬 좋았다고 여겨진다. 그 돌계단은 어떻게 처리 됐는지, 시민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공사의 관례로 보아 본래의 돌계단을 철거하는데, 만만찮은 철거 예산이 들었을 법하다. 이 과정에서 그 돌계단은 철거 회사의 몫으로 처리되진 않았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그 회사는 본디의 계단 철거비보다 철거한 돌로 훨씬 재미(?)를 봤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모르긴 해도 웬만한 규모의 회사 같으면 하루 아침에 횡재(?)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과거 돌계단은 가치가 있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부디 김천시가 기왕에 철거한 그 돌계단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입 처리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민선시대 이래 김천은 어느 고장에 못잖게 깨끗해 졌다. 이마저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깨끗함에도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6. 인도 블록과 가로등
민선 7년여 동안, 멀쩡한 인도 블록과 가로등이 너무 쉽게 자주 교체된다는 기분을 떨굴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리 잦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잦았던 것처럼 느껴질까?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상태가 괜찮은 걸 바꾸기 때문일 터이다.
알뜰한 사람이 잘살 듯, 예산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자치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돈으로 하는 건 시기가 따로 없다. 집을 짓든 길을 새로 내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 들여 하는 건 아무나 할 수가 있다. 그건 능력이 아니다. 잘난 사람, 많이 배운 사람만 돈을 쓸 줄 아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은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무언가를 내세우기 위해 헛돈을 쓰지 않는다. 이는 못난 사람의 못난 생각이랄 밖에 없다.

7. 아름다운 화장실(?)과 각종 상
각 관공서, 회사, 업소까지 화장실이 많이 깨끗해 졌다. 도로공사에서 배워왔든, 어쨌든 화장실이 깨끗해진 건 다행이다.
아름다운 화장실이란 벽걸이 접시 같은 것만 돌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세계 경제 순위 13위권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화장 좀 깨끗이 해놓았다고 굳이 그런 것까지 만들어 돌려야 했는지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그리고 아무려면 화장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아름다운 화장실이란 표현도 깨끗한 화장실로 수정되어야 할 문제다. 어법을 알고, 어법에 맞게 썼으면 좋겠다.
아무튼 어느 식당에 갔다가 자랑삼아 아름다운 화장실 접시를 선반에 올려놓은 걸 보았다. 순간 음식 맛이 싸악 가셨다. 그 접시를 보고 허투로라도 아름다운 장미 밭을 연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깨끗해도 화장실은 화장실일 뿐이란 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민선시대 이후,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각종 상이다.
그 동안 김천시가 받은 상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어쨌든 별 희안한 단체에서까지 상을 준다는 것도 매번 가로에 걸리는 현수막을 보고 알게 되었다.
별의별 명목으로 상을 주는 단체만큼이나 꼬박꼬박 수상을 축하하는 단체 또한 김천시 안에 많아 보였다.
그런데 그 상이라는 게 그리 신빙성이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 고장에서 어느 상을 수상했다고 대대적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요란을 떨 적에, 다른 고장을 지나다 보면 그 지방에도 똑 같은 상을 받았다고 현수막을 내걸어 놓은 걸 보게 된다. 같은 부문에서 대상, 혹은 최우수상이라는 것도 두 개, 세 개였다면 분명히 상이라는 것 믿을 만한 게 못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이쯤 대고 보니 상이라는 것 너무 좋아 할 일만은 아니지 싶다.
가장 문제는 김천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금까지 일일이 지적했듯이 김천시가 무엇 하나 특별히 잘 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수시로 수상을 한다는 게 놀랍다 못해 차라리 신기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는 말이다.
하긴 상이란 정말로 우수하고 잘 해서 받는 경우보다, 상을 잘 받는 재주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때문에 상을 받고도 얼굴을 제대로 못 드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세상이 워낙 요상하고 묘한 탓이라 그런 것 같다.

8. 고속철도
지금 이 고장 김천은 온통 고속철도 역 유치를 요구하는 현수막 천지다. 현수막 물결에 현기증이 일 지경이다.
벌써 이 고장에서 고속철도 공사가 진행된 지 얼추 4년여가 되었지 싶다. 그 동안 마치 남의 동네 불구경하듯 무관심하던 시청과 각 단체들이 이즈음에 와서 새삼스럽게 이처럼 열성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는 8년 내지 9년쯤 전에 일었어야 했다고 본다. 그랬더라면 보다 수월했을 것이고, 정부로서도 예산 손실이 적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은 국민들의 혈세이다. 왜,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되어야 하는가?
지금 고속철도 유치를 위해 애쓰는 실질적 주체가 누구이든 지혜롭지 못한 건 틀림없다. 여태껏 방관하고 있다가 마무리 단계인 지금에 이러는 건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8~9년 전에도 분명히 지역출신 국회의원은 있었고, 김천시에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곳곳에 현수막을 내건 그 많은 기관 단체들이 분명 그때도 있었다.
물론 김천에 고속철도 역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정부로서도 곧바로 후회할 것으로 확신한다.
만약 김천역을 건너뛴다면 구간 거리가 맞지 않는 모순을 저지르게 되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김천에 역이 세워지면 이웃한 구미와 상주뿐 아니라, 문경, 경남 거창, 충북 영동 (상행선 고속철도 이용), 전북 무주 등 최소 7개 시군 정도는 혜택권에 든다는 사실이다.
이들 지역은 구미를 제외하고 나면 대개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린 지역들이다.
이렇다고 봤을 때 고속철도 김천역 설립은 지역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당위성이 있다.
당연히 고속철도 김천역은 유치되어야 한다.
김천이 다른 지방보다 빠르게 시로 승격하기 까진 지리적 여건의 덕을 많이 보았다.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고, 경북선 시발지(始發地)이며, 경남 거창으로 뻗은 도로가 발달한 덕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유동 인구가 많은 고장이 되었고, 인구가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조건만으로도 고속철도의 수익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진다.
그 옛날 교통이 발달해 영화를 누렸던 김천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통이 너무 발달되어 오히려 침체를 맛봐야 했었다.
하지만 김천에 고속철도 역만 유치된다면, 더욱 발달한 교통 수단인 고속철도 덕을 보아 김천은 다시금 옛날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될 것을 확신한다.
시간상으로 서울과 부산이 통근거리라는 사실이 이를 보장한다고 믿는다.
단순하게 앞장서는 큰 인물이 없어서, 혹은 정책이 아닌 청치 논리로 고속철도 김천역 설립이 외면되어선 절대 안 된다.
정부는 당초 김천에 유치한다는 말이 돌다가 상주시 청리면에 유치 완공했던 고속전철 수리창을 어느 날 특정 지역으로 보내버린 것 같은 우(愚)를 또다시 범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기왕에 개통하는 고속철도라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대도시 국민만 국민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에필로그
김천을 매우 사랑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일부 시청 직원들에게 깨우침을 주려고 이 글을 싣는다.
아무리 잘하려고 한 일이라도 혜안을 가지고 다시 보면 모순과 오판과 오류로 보일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는 영웅이 되려고 해선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면 넘치기 쉽다(過猶不及).
또, 그러다 보면 자칫 그릇된 결과를 낳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제발 봉급을 받기 위해 출퇴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고향을 혹은 김천을 진심으로 위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공직자가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매사를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역의 덕이 되는 생각만을 해 달라는 것이다.

심형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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