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박원진 기자) =

몇 일 전 아이들 할머니 생신상에 팥밥 올리고 남은 팥으로 단팥죽을 만들었다.
단 팥죽을 만들다 돌아가신 친정할머니가 생각났다.
친정 할머님은 가족의 생일이면 꼭 팥밥을 지어 밥그릇에 고봉으로 수북이 밥을 담아주셨다.
생일날 밥그릇은 유난히 크고 또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서 하루 종일 나누어 먹어야 했었다.


단 팥죽 만들며 친정할머님 생각을 했다.


팥밥을 하는 이유는 팥의 붉은색이 부정을 쫒아 낸 다는 주술적인 의미와 수북이 담는 이유는 평생 배곯지 말라는 기원도 담고 있다고 하셨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 된다.
팥밥이 올라오는 날이면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가족이 많지 않았던 우리집에 한달에도 서너번씩 팥밥이 오르는 경우가 있어 할머님께 오늘은 누구 생일이냐고 여쭤보면 큰 숙부님, 작은 숙부님, 출가하신 고모님들, 며느님이신 숙모님들과 손자․손녀들 모두의 생일을 일일이 기억하셨다가 팥밥을 지어 무병장수를 기원하셨다.
모두들 멀리 있어 당신 손으로 생일상을 차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기념하며 축원하신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렇게 큰 병 없이 무탈하게사는 것도 할머니의 축원이 큰 몫을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부모가 믿고 사랑하는 자식은 어디에 있던 모든 이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집안 어른들의 믿고 사랑하신만큼 세상에서 제몫을 하고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 내리 사랑이라는데 받은 만큼 자식들을 사랑하고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도 팥 들어 간 음식을 좋아한다.
아마도 할머니 영향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한다고 밖에서만 살다보니 아이들 간식이나 먹거리는 할머니 손에서 이루어져 왔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할머니가 팥을 유난히도 좋아하신다.
팥빵, 팥죽, 팥떡, 팥 송편, 단팥죽 등 등
할머니의 식성을 우리 아이들이 닮은 것도 같다.
유리는 팥밥은 싫어하지만 팥죽은 좋아한다.
유리가 엄마 팥 남은 거 있으면 단팥죽 만들어 달라고 졸라서 팥을 씻어 난로 위에다 뭉근히 삶았다.
흑설탕을 넣고 간을 맞추니 그런데로 맛있는 단팥죽이 됐다.
만들어 놓고 보니 멀리 있는 아들 녀석이 생각난다.
유난히도 팥 들어 간 음식을 좋아하는데….
설에는 집에 올 것 같아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할머님께서 멀리 있는 자손들의 생일에 팥밥을 하는 마음이 지금의 내 심정과 같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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