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박원진 기자) = 낮부터 우리집 마당은 부산하다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마당한 가운데서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올해 일곱살 난 딸아이의 손길이 분주하다.
붉은 봉숭아 꽃잎과 초록색 잎을 따 모으고 있는 중이다. 작은 바구니에 흡족하게 따 모으면 신문지를 깐 채반에 펴서 그늘에 말린다.
그늘에 말리지않으면 물기가 많아 색이 선명하지 않고 너무 햇볕에 말리면 바짝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딸아이는 마음이 조급한 것 같았다. 할머니 뒤를 따라다니며 “할머니 언제 찧어요” 부엌에서 절구를 찾아 들고는 빨리 작업 시작을 바라는 눈치다.
오늘은 저녁을 일찍 먹고 봉숭아 꽃물들일 준비를 나도 해야 겠다.
옛날에는 호박잎이나 아주까리 잎을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비닐로 대신해 운치가 없어졌다. 실로 찬찬이 묶어 놓고 행여 잠든사이 풀릴세라 잠도 설친다. 이른 아침 곱게 물든 손톱을 비교하며 서로가 곱게 들었다며 야단들이다. 봉숭아 물을 들인 후부터는 손톱 자르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위생상 짧은 손톱이 좋은 줄은 알지만 그래도 싫어지는 것을 어찌하리오?
봉숭아 물들이기는 필자가 어린시절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적으로 하는 행사였다.
여름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볕이 쨍하면 할머니께서는 출가한 딸들과 타지에 있는 며느리와 손녀들을 날을 정해 불러들이셨다. 봉숭아 꽃물을 들이기 위해서다.
어찌 생각하면 색상도 다양하고 바르기도 편한 매니큐어도 많은데 굳이 바쁜 자손들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귀찮은 일을 할머니는 해마다 하셨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모인 자매간• 동서간• 사촌간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짧은 여름밤이 지난 날 아침이면 누가 제일 예쁘게 들었냐고 비교하며 시샘하기도 하였었다.시샘이 많은 작은 고모님은 무조건 자신이 제일 예쁘다고 우겨대고는 했었다. 필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해 동안은 봉숭아 물들이는 행사를 가지지 못했었다.
딸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해마다 그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꽃물을 들인다. 조금은 불편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딸아이를 “작은 아가씨”라 부른다.
먼 훗날 아마 우리 작은 아가씨도 필자처럼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 아가야 엄마도 할머니랑 꽃물들였단다 하며 자기 딸아이 손에 실을 찬찬이 매어주지 않을까? 어쩌면 할머니가된 필자가 손녀에게 그리하지않을까?
필자의 할머니는 참으로 고운 분이셨다. 해 저문 여름저녁 옥비녀로 곱게 쪽머리를 하고 옥색 모시치마저고리로 한껏 멋을 내고 부채질을 하시던 모습을 보며 먼 뒷날의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었다.
사람들은 문화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한다.
지도층에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문화라는 말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문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 주변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작을 것들은 무시하고 외래 문명이나 외국문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문화인인지 우리의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서 딸들에게 이어지는 이런 작은 것을 지켜가고 계승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인이 아닐까 하는 지나가는 생각에 ?p 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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