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송승호) = <논설고문 칼럼> - 송승호 교수의 김천사랑이야기(10) - 어쭙잖은 운동선수우리말에 ‘어쭙잖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몸에 익지 않아 익숙하지 못하고 엉성하고 거친 데가 있다는 의미죠. 저의 초등학교 운동선수 시절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저는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4학년부터 5학년 전 학기 때까지 기계체조 선수였습니다.
당시 저희들의 지도교사는 김인성태(작고)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분은 키도 크고, 얼굴도 대단한 미남이셨습니다. 몸매도 날씬하셨지요.

어린 기계체조부 선수들은 수업을 마친 뒤,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기계체조는 뜀틀을 비롯해 평행봉, 마루운동, 철봉 등으로 구성되지만, 당시 우리들은 뜀틀과 철봉 그리고 매트운동에 국한되었습니다. 매트운동은 원래 마루운동이죠. 그러나 초등학교에는 별도의 시설도 없었고,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이 익히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인성태 선생님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셨습니다. 연습 도중, 엄살을 피우거나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할 때에는 여지없이 벌칙이 가해집니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벌칙이 내려지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습니다. 최악의 벌칙은 꼬집기였습니다. 아랫배나 허벅지, 또는 젖꼭지를 꼬집는 벌칙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김천시내 초등학교에 기계체조부가 있는 학교는 김천초등학교와 서부초등학교 뿐이었습니다.
두 학교는 봄과 가을에 경기를 했죠. 경기 장소는 서부초등학교였습니다. 김천초등학교보다 시설이 좋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서부초등학교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비록, 서부초등학교에게 한 번도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었습니다.
학교 운동회 때, 우리 기계체조부 선수들은 스타였습니다.
학부모님과 전교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범을 보였죠. 그리고 박수도 많이 받았죠. 부상으로 공책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받았습니다. 보통 1인당 30여 권씩 받았으니까요.

5학년 2학기 때, 김천초등학교의 기계체조부가 해체되었습니다. 기계체조부 선수들은 다른 운동부로 배치가 되었습니다. 육상부, 핸드볼부, 배드민턴부, 배구부가 있었는데, 저는 배구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등번호는 2번이었습니다. 원규가 4번, 강춘이가 7번, 종업이가 5번, 성진이가 1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선우와 승일이, 성래도 있었구요. 정표는 배구부에 있다가 배드민턴부로 스카웃돼 갔구요.

우리 배구부는 그 해 시민체전에 출전을 했습니다. 배구경기는 모암초등학교에서 열렸습니다. 모암초등학교에게 아깝게, 정말 아깝게(?) 패했죠. 다음해 김천시민체전 때에도 출전을 했죠. 김천고교에서 열렸는데, 봉곡초등학교에게 또 패했죠. 멋진 썬글라스를 끼시고 응원을 해주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은 저에게 짬뽕을 사주셨습니다. 당시 짬뽕은 평소에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가격이 우동, 짜장면에 비해 비싼 음식이었기 때문이죠. 짬뽕은 당시 우리들에게는 특별식이었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프로필
– 김천시 아포읍 출생(52세)
– 김천초등·성의중·김천고교·부산대 경영학과·동아대 대학원(정치학 석사)졸업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특임교수(현)
-김천희망포럼 위원장(현)
-TV조선, YTN, MBN, 채널A, 연합뉴스y 등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현)
– 부산매일신문 정치부장·월간조선(조선일보사) 취재팀장
-한국산업인력공단 상임감사, 한국폴리텍대학교 감사 등 역임
-제18대·19대 국회의원 선거 김천지역구 새누리당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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