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외부필진 기자) =

저는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甲으로부터 농기계를 할부로 구입하는데 보증이 서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보증을 서 주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甲이 자신의 소유인 논과 임야를 처분하면 할부매매대금은 충분히 갚을 수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여 甲의 말을 믿고 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그러나 甲의 말과는 달리 甲의 논과 임야는 이미 농협에 담보가 잡혀 있어 담보가치가 거의 없었습니다.

현재 甲은 할부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어디론가 도주해 버렸고, 농기계회사에서는 저에게 농기계할부매매대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甲을 대신하여 할부대금을 갚아야 하나요? 甲에게 속은 것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해설>

계약을 취소할 수 없고 할부대금을 갚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칙적으로 타인에게 속아서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0조 제1항).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도자기를 팔면서 고려청자라고 속이고 팔았다면 도자기를 산 사람은 사기를 당한 것이므로 계약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인 사람이 계약의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라면, 계약의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 뿐입니다(민법 제110조 제2항).

그런데 사례와 같은 보증계약은 문의하신 분(보증인)과 甲(피보증인)간의 계약이 아니라, 문의하신 분과 농기계회사(채권자) 간의 계약으로서, 여기서 甲은 비록 보증으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입니다.

따라서 사안에서는 甲이 보증인을 속인 사실을 농기계회사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 농기계회사로서는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계약의 취소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한편 이 사례에서 앞의 사례에서 말씀드린 착오를 이유로 한 계약의 취소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보증계약에서 피보증인에게 충분한 자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동기의 착오”라고 할 수 있으므로 보증인이 이러한 사정, 즉 甲에게 충분한 자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보증을 서 준 것이라는 사실을 농기계회사에 표시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없다면 동기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는 것 역시 어려울 것입니다.

참고로 사기와 관련된 다른 대법원 판결 하나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통상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분양과 관련하여 광고하는 평수와 실제의 평수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건축회사에 속아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이 점에 대해서 우리 대법원 판결은 “일반적으로 상품의 선전·광고에 있어 다소의 과장·허위가 수반되는 것은 그것이 일반상거래의 관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시인될 수 있는 한 기망성이 결여되며, 연립주택을 분양함에 있어 평형의 수치를 다소 과장하여 광고를 하였으나, 그 분양가의 결정방법, 분양계약체결의 경위, 피분양자가 그 분양계약서나 건축물관리대장 등에 의하여 그 공급면적을 평으로 환산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점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그 광고는 그 거래당사자 사이에서 매매대금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이 되었다고 할 수 없고, 단지 분양대상주택의 규모를 표시하여 분양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연립주택의 서비스면적을 포함하여 평형을 과장한 광고가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 사실을 거래상의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술의 정도를 넘은 기망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95다19515 등 판결).

이 판결에서 알 수 있듯이 사기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기 위해서는 속은 내용이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한 구체적 사실이어야 하고, 속이는 방법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술의 정도를 넘은 기망행위에 해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임호영법률사무소 http/limhoyo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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