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같지만 언론 신뢰건 싸움”(황용석) =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 가운데 하나이다. 2001년 자료에 따르면 워싱턴 포스트의 평일판 구독자수는 80만2594명이고, 일요판 구독자는 107만809명이나 된다. 이 신문은 뉴스위크와 인터내셔날 헤럴드트리뷴 지분의 50%를 소유하고 있다. 6개의 TV 및 수많은 지역신문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거대한 신문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 소식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너무나도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 노조의 파업은 그 의제나 방법에 있어 신선한 충격을 던져둔다.
지난 5월 18일 노사협약 기간이 만료된 뒤 5차례에 걸친 노사협상이 결렬되면서 워싱턴포스트 노조는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이른바 ‘바이라인 스트라이크(byline strike)’를 한시적으로 벌였다. 바이라인이란 기사 끝에 붙는 기자의 기명 또는 서명을 말한다. 이 파업에는 수백명의 기자는 물론 칼럼니스트, 사진기자, 비평가, 아티스트까지 참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바이라인 스트라이크는 신문에 게재되는 기사나 작품에 파업 참여자의 기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무기명 기사를 만들겠다는 것. 바이라인 스트라이크로 인해 이 기간 동안 일반 기사에는 ‘워싱턴포스트 스태프라이터’라고 표기되며, 스포츠, 메트로 등의 칼럼에는 칼럼니스트의 이름이 빠진 채 인쇄된다.
기자의 이름은 보도에 대한 책임성과 전문성을 보증하며 독자에게 신뢰도를 높이는 장치이다. 노조원은 아니지만 노조 정책을 따르는 스타일섹션 스탭의 한 사람인 스튜버의 말처럼 “바이라인은 기자에게 있어서 자아이기도 하며 신뢰도”이기도 하기 때문에 노사 양측에 큰 부담을 던져주고 있다. 이것이 곧 뉴스의 품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무기명 기사는 위싱턴포스트의 권위에 금을 가게 할 수 있다. 바이라인 스트라이크는 장난 같아 보이지만 언론의 신뢰를 걸고 싸우는 무서운 무기인 셈이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놓고 파업을 벌이는 이슈는 임금인상률, 실제 이용가능한 휴가일수, 현재 3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탈퇴할 수 있는 노조원 자격 등의 문제이다. 임금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이슈 중 하나는 노조가 신문 이외에 워싱턴포스트의 웹사이트에 올리는 별도의 기사나 자료제공을 중지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자들은 인터넷용 기사를 작성할 때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사실 이 이슈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안고 있는 잠재적인 사안이다. 인터넷 뉴스를 운영하면서 기자들의 노동량이 더 많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인터넷 뉴스서비스가 강화된다고 볼 때 이와 관련한 노동에 대한 보상문제는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노조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기자의 경우 바이라인을 삭제해서 내보내라고 지침을 내렸다.
노조원 자격과 관련해서 회사측은 노조를 즉각 탈퇴할 수 있도록 조항을 고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측은 조합원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면 한 해 예산을 예측할 수 없다고 반박하면서 이런 의제가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명문과 바이라인 스트라이크에 대해 내부에서 이견도 존재하는 것 같지만 비교적 단결된 모습으로 많은 노조원들이 참여중이다. 5일간의 바이라인 스트라이크 뒤 노사는 다시 협상에 나섰다. 그 결과는 귀추를 지켜봐야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워싱턴포스트의 파업은 우리에게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준다. 기사의 기명을 가장 가치있는 재산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는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한국언론에 던져주는 함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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