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뉴스 박원진 기자) =

송정 에그팜 이순기 대표 인터뷰이순기 경북도의원후보자의 사회 첫발은?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고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고 회사원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5년만에 무작정 직장을 청산, 지인이 공장부지를 무상 임대해 준 덕분에 김천상공사라는 판금공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2년만에 공장부지를 매입할 수 있었으며 안정적인 사업을 하게 되었다.

회사경영을 접고 귀농을 하게 된 이유는?

농촌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며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 될 즈음에 IMF를 맞아 경영은 차츰 어려워졌으며 새로운 활로를 찿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농업이라면 아직도 미개척 부분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농업기술센터 및 농업단체에서 실시하는 선진농장을 견학하던 중 고소득 작목인 버섯재배에 관심을 가졌다.

재배사 및 기계에 관련된 것들은 자신이 있어 버섯재배 사업계획서를 작성 ‘97년 농업정책자금 신청하였고 1998년 3월 고향인 김천시 부항면으로 귀농했다.

귀농인으로서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귀농 4년만에 새농민상 수상, 세계농업기술개발대상, 벤처농업인지정.팽이버섯을 년간 8억이상 생산하여 북대구공판장으로부터 2000년 1월 감사장을 받았으며 2000년 5월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우수농산물출하에 대한 감사패를 받은바 있다.

또한, 버섯재배경력 4년만에 새농민상 수상과 우리농업의 미래를 여는 천인(天人)으로 지정, 2003년 세계농업기술개발대상수상, 2005년 경북농정대상수상, 2005년농립부장관상표창, 2006년 전국우수농업인지정되는 등 우수농업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축산으로의 전향한 이유는?.

30억이상의 매출을 올려 선도농업인으로 주목받고 주위의 부러움을 샀으나 부항댐건설로 농장이 수몰되어 버섯농사를 포기해야만 했고 양계축산으로 전향했다.

2008년 11월에 산란계 10만수를 시작한지 만2년 만에 20만수로 농장확장을 하는 등 과학영농과 품질로 승부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2009년 9월에 무항생제 인증을 획득하고, 2010년 10월 HACCP인증도 받는 등 타 축산농가보다 우수한 품질로 소득을 증대시켰다.

또한, 농가장부를 전산화프로그램 시켜 손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각 동의 계군들의 산란성적, 백신프로그램, 음수, 사료량을 엑셀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여 운영함으로써 문제점이 발생되었을 때 조치가 발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고 특히 질병관리에는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농가의 수익률 창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계사내의 축사환경 감시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갑자기 정전이 되거나 이상온도, 그리고 음수량을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체크가 가능하고 이상이 발생 할 시에는 핸드폰으로 문자로 알림이 들어오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여 타농장과는 다르게 첨단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농업도 기업이다. 2세 후계자에게 대물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현대농업은 기업형 농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기업형 농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대라 선진국처럼 2세에 대물림하여 자녀 2명이 선진기법으로 양계축산산업 기술 및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

성공한 농·축산인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꿈꾸게 된 계기는?

98년 귀농하여 타 시·도의 성공한 농업인 모임을 하다 보니 타 도는 농업정책이나 정부예산에 대한 활용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도의원이 되면 김천에 대형 로컬 푸드 매장을 만들어 지역의 농업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산품들을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여 지역농산물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 또 부항댐과 연계한 농업관광자원의 활성화를 이루고 싶어서 정치인을 꿈꾸게 되었다.

일본의 작고 가난한 농촌이 이러한 로컬푸드의 성공으로 부자마을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천은 도·농 복합 도시인만큼 일본보다 더 나은 여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으로서는 이러한 사업의 추진에 한계가 있어 도의원이 되어 정책적으로 이사업을 성공시켜 김천의 농업을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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