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사랑(조순자) = 사랑이 존재 하는 것은 우리들의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함 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랑을 얻는 데는 오래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내가 김천을 사랑하고 이곳 조마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정말 많이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였듯이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오늘 아침 일어나서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소쿠리 속에 음식 담긴 것처럼 그 안으로 찬물도랑과 감천냇가가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엔 논과 밭이 적당히 펼쳐진 것이 참 좋은 동네에 내가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해 졌습니다.
누가 나에게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서슴없이
“산 좋고, 물 좋고, 정자도 좋고, 들 까지도 좋은 곳 김천에 삽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렇게 완벽하게 좋은 데가 어디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동네가 그런 완벽한 곳이라고…’
그렇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김천시 조마면 신안동은 산 좋고, 물 좋고, 들만 좋을 뿐이 아니라 동네사람들 인심까지도 후덕하고 참 좋은 곳이랍니다.
내가 이렇게 우리 동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사랑할 수 있기까지는 강산이 두 번도 넘게 바뀌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가만히 지난세월을 돌아보면 정말 꿈같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22년 전 반신불수장애인으로 서울토박이 깍쟁이로만 살던 22세 어린철부지였던 내가 휠체어를 타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띠 동갑이던 36세의 노총각 남편에게로 시집이란 걸 오고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돌아봐도 정 붙일 곳이라고는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낯설고, 물설고 말투까지 생소한데다 남편과 나의 처지가 몸까지 불편하고 나이차이도 많다보니 주위 사람들의 또한 ‘에구 며칠이나 살다가 떠나려고 저러나’ 하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서울사람들끼리는 만나서 내가“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도 당연히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주고받기 마련인데 아무리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골목에서 마주쳐서 내가 먼저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봐도 “네”라고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보니 우리 신혼방의 한쪽귀퉁이를 치우고 그곳에 100원짜리200원짜리 과자봉지를 챙겨놓고 동네 코 흘리게 꼬맹이들을 상대로 하는 구멍가게를 시작하였습니다.
천성이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을 하는 것이었는데, 몸이 불편했던 관계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꼬맹이들을 상대로 과자장사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고, 아이들이 오면 “어서오너라”반갑게 인사를 건네주고 겨울이면 언 손을 내 품안에 넣고 녹여주고 여름이면 덥다고 부채질도 해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했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들은 나를 가게아줌마가 아니라 그냥 부르기 좋게 “가게고모” 라고 부르며 잘 따르고 만날 때마다 서슴없이 볼에다 뽀뽀를 해줄 만큼 친숙해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구멍가게를 키워나갔고 아이들 장난감도 들여놓고 아이스크림도 들여놓으며 하루하루 구멍가게를 키워나가며 사는 재미를 붙여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김천 시내를 나가서 가게에서 팔 물건을 떼어서 한 박스가득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 한분이 내 곁으로 다가오시더니 “새댁이 중동가게 집 새댁이오?”라고 물으시기에 “네!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니“내가 모모할아버진데. 우리 애를 알지요? 라고 하시기에 “그럼요, 우리가게에 과자 사러 자주 와서 잘 압니다, 얼마나 귀엽고 똑똑한 데요” 라고 아이 칭찬을 한참 하려는데 갑자기 그 할아버님이 벌컥 역증을 내셨습니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 아무리 돈도 좋지만 그 철없는 것들을 예쁘다고 꼬드겨서 과자 사러 간다고 자꾸만 돈 내놓으라고 조르는 통에 할아비가 죽을 지경이구만”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이지 아이들을 꼬드겨서 과자를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열심히 늘어놓았지만
‘얼마나 이이들 혼을 빼놓았으면 애들이 제 엄마보다 가게 집 고모가 더 좋다고 난리를 칠까, 라면서 나를 외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지만 이런 것이 타향살이에 대한 설움인가 보다고 입술을 깨물면서 억울함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니고 나의 상냥함은 언제나 문제꺼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웃집 아저씨들께 웃으면서 인사를 자주 건네면 내가 그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 같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처신하기가 여간 눈치가 뵈는 것이 아닌지라 길가에서 만나도 외면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에게 남편 같은 사람과 살지 말고 더 좋은 데로 시집가라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정말 이런 곳에 정붙이고 살 수 있을지 많은 갈등과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논에 모를 심는데 새참을 해나가려니 많이 바쁘다고 나에게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한창 농번기 바쁜 철이라서 집에서 노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흔쾌히 그 아줌마를 따라가서 커피도 끓여주고, 반찬도 담아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나니 남편에게 가져다주라면 새참을 한상가득 차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생활에만 익숙하던 나는 논밭에 내가는 새참이 그렇게 맛있는 밥인 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이곳으로 내려오고 나서 처음으로 머슴밥만큼 담은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습니다.
사실은 그동안 음식도 서울음식과 경상도 음식이 많이 다른지라 먹는 것도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 없었는데 뜻밖의 새참을 얻어먹으며 입맛을 살린 나는 그 후에 이웃집 누가 모내기나 감자를 캔다는 소문이 들리면 오라고 하지 않아도 “뭐 도와 줄 것 없어요?” 라면서 내가먼저 찾아가보았습니다.
농사철은 언제나 바쁜 철이라서 빈손이 곧 일손이었습니다.
가서 조금씩만 일을 도와주면 언제나 푸짐한 밥 한상을 얻어 올 수 있기에
나는 그렇게 새참 얻어다 먹는 재미에 푹 빠져서 이웃집에 모심는 날이나 감자 캐는 날을 주인보다 더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남들처럼 들에 나가서 모를 심거나 감자를 캐는 데는 함께 할 수 없지만 새참을 하는 데는 함께 할 수 있으니 그 다음부터는 동네 사람들도 새 참하는 날은 일부러 나를 불러주며 새참을 나눠먹으려고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오고가며 어울리다보니 이방인 취급을 하던 이웃사람들도 내가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서울 태생 이다보니 아무에게나 상냥하게 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뚝뚝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나? 밥 묵자! 그만 자자!”이렇게 하루에 단 세 마디만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경상도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배실 배실 웃으며 눈웃음치고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내가 얼마나 낯설고 이상했을지 짐작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장 무서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한겨울에 폭설이 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폭설이 내리면 눈을 치워야하는데 우리 집엔 눈 치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대문 앞의 눈이라도 치워야지만 동네사람들이 다니는데 지장이 없을 텐데 삽질을 못하는 내가 쓰레받기로 한번씩 눈을 치우고 나면 하루온종일 치워야만 겨우 길이라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 무서운 폭설이 너무 자주 내리는데, 작년부터는 폭설이 내려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어느 폭설이 내린 날 아침 남보다 빨리 일어나서 눈을 치우려고 대문을 열었는데 누군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쌓인 눈을 말끔히 치워놨지 뭐예요.
날이 밝고 나서 누가 눈을 치웠느냐고 물어봤지만 우리 집 대문 앞의 눈을 치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꼭두새벽에 웬 천사가 다녀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에서는 자기 집 앞의 눈도 치우지 않아서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에겐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몸이 불편한 장애인부부를 위하여 말도 없이 우리 집 앞의 눈부터 말끔히 치워주는 멋진 천사들이 사는 우리 동네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뚝배기 사랑을…
양은냄비처럼 금방 끓어오르지는 않지만 뚝배기처럼 천천히 달아올라서 오랫동안 사랑과 따뜻함이 지속되는 뚝배기사랑을…
그런 은근한 사랑을 받으려고 그동안 그 많은 고뇌와 인내가 필요 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나는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김천에 사는 진정한 김천 사람이고 김천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나는 이래 김천의 토박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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