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경교수) =

<자치분권>과 국민의 직접민주정치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되어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자치분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시민사회 개헌논의의 성숙도와 그 사회적 파장을 알려주는 획기적 사건이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내 건 것은 <지방분권>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보다 지방분권이 더 낫겠지만, 지방분권이란 지방 유지들의 텃세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것도 역시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탐탁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치분권>이란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이원적 구도를 벗어나서,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초자치단체의 3분(分) 구도를 전제한 것이다. 이 때 지방은 ‘지방정부’가 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다.

지방정부 산하에 풀뿌리 같은 자생의 기초자치단체가 있다.

또 지방정부라는 용어 자체가 지방과 중앙이 대등한 입장에서 고유의 영역을 주장하고 맞장 뜰 수 있음을 전제 한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이 같은 3단계 구조인데, 적어도 내정에서는 맞장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큰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짜면, 중앙정부는 추인을 하고 지방간 형평을 맞추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때 지방정부는 기초자치단체의 뜻을 수렴하여 예산에 반영한다. 실로 그리스에서는 각 지방 마다 나름의 특징 있는 정책을 추구하고 중앙에서 마음대로 간섭하지 못 한다.

각 지방정부 마다 독립기념일도 다르다. 약 100여년에 걸쳐 터키 지배에 대항한 독립 투쟁에서 각 지방은 스스로 무장봉기하여 독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끈질긴 게릴라의 전통은 국민이 중앙이나 지방 정부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상명하달과 복종의 미덕을 요구하는 봉건적 권위주의, 식민지지배, 유신독재 등이 민주의식을 말살해온 한국에서는 지방이 중앙권력에 종속될 뿐 아니라, 국민(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식을 키우지 못했다.

정치는 정치가의 몫이며, 반항은 골수 운동권의 몫으로만 여기고 무관심한 경향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런데 작년 말 촛불, 딱히 누구에게서 사주 받은 것도 아닌 자생적인 몸부림으로서의 그 평화의 촛불혁명이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그 이후 국민의 ‘직접민주정’이라는 말이 회자되게 되었다. ‘직접민주정’이란 국민들이 스스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빼앗아서 국민이 직접 행사해야 하고 또 공무원의 공직수행에 대해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정부 권력의 부패상을 보면서 이제 누구 손에도 마음 놓고 맡기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국민 스스로 얻게 되었다.

그런데 촛불혁명을 거친 다음에도 한편으로 ‘이명박그네’를 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기대를 걸곤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다 성인들로 구성된 정부는 아닐 것이다. 잘 하려고 해도 실수로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정부에 대한 기대 자체가 권력을 오만하고 타락된 것으로 변질시키게 된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독점해온 권력을 지방정부로 나누고, 나아가 국민에 의한 직접민주정 실천을 위해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 국민감사제 등이 거론된다.

직접민주정이 도입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 권력에 국민이 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공익보다 사리를 추구하고, 민주제도보다 권위적이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다.

일부 정치가들이 그러한데, 그런 사람은 사실 보수 쪽에 더 많다.

이들은 정치를 정치가들만의 놀이터로 유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직접민주정치 제도의 도입을 꺼리는 것이다. 이들이 개헌을 한답시고 내건 것은 정치가들만의 권력배분으로 국민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를 할까, 아니면 이원집정부제를 할까 하는 것인데, 후자는 의회의 다수당이 총리를 내고, 그 총리가 대통령과 국가권력을 적당하게 양분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정치가들이란 것이 공익이나 국민보다 자기 이익에 급급한 것같이 국민들에게 비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나 총리가 가져가도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것. 지금 하는 개헌 논의도 국회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시민들이 총대를 메고 나선 사실을 주지하시라!

중앙집권보다 지방분권이 낫듯이, 제왕적 대통령보다 이원집정부제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그것도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므로. 그러나 우리 국민은 촛불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정치는 정치가들만의 것이 아니고, 정치권력은 다소를 막론하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올렸듯이 항시 감시 하고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이원집정부제를 내세우면서 국민 직접민주정의 논의를 막후로 밀어내서 실종시키려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개혁에 역행하고 국민을 여전히 들러리로 전락시키려는 음모자란 사실을.

학력: 최자영(崔滋英)은 경북대학교 문리과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리스 국가장학생으로 이와니나 대학교 인문대학 역사고고학과에서 「고대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의회」로 역사고고학 박사학위(1991)를 받았고, 다시 이와니나 대학교 의학대학 보건학부에서 의학박사학위(2016)를 취득했다.

경력: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2010-2017), 한국의 그리스, 로마사, 오리엔트사 분야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의 학회장(2016-2017)을 역임했으며, 현재 ATINER (Athenian Institute for Education and Research: 아테네 소재 연구소)의 역사부 부장으로 있다.

연구: 저서로 『고대 아테네 정치제도사』(신서원, 1995)[문화체육부 역사부문 우수도서],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신서원, 2004), 『고대 그리스 법제사』(아카넷, 2007 [대우학술총서 588 :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역사부문 우수도서]),

공동 편저(Jayoung Che & Papas, C. J. Nicholas ed.)로 The Traditional Mediterranean: Essays from the Ancient to the Early Modern Era (Co-sponsored by Athens : ATINER. & IMS(BUFS), 2011)가 있다.

역서로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송원, 1995),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 국가제도> 등을 번역한 『고대 그리스 정치사 사료』[공역](신서원, 2003), 기원전 4세기 변론가 이사이오스의 법정 변론문 『변론』(안티쿠스, 2011), 『헬레니카』 크세노폰 (아카넷, 2012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9]), 그 외 그리스의 저명한 현대 문학가 안토니스 사마라키스의 작품을 번역한 『손톱자국』(그림글자, 2006), 논문으로는 “고전기 아테네 여성의 시민권과 사회적 지위”(서양사론, 9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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