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이동영) =

국책사업인 ‘보라호’ 개발에 참여해 시범비행을 하다 숨진 한국항공대 은희봉(殷熙鳳) 황명신(黃明信) 교수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엄수될 예정이었으나 장례 절차와 보상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31일로 연기됐다.
유족 대표인 정홍수(鄭弘洙·은 교수 처남·50)씨는 30일 “떠나는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와 보상이 제시되지 않아 31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마지막 길이 명예롭게 마련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대통령이 순직한 두 교수에 대해 국가유공자 수준의 지원을 지시했다는데 훈장 추서 외 다른 현실적 지원은 없다”며 “유족에게 또 한번의 슬픔을 안겨주는 이런 현실을 보고 누가 국책사업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당초 관례에 따라 3일장 또는 5일장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학교측이 유족 대표와 합의하지도 않은 채 30일 4일장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고 유족들은 조문객들에게 설명했다.
항공대는 은 교수에게 사학연금 1억600만원, 황 교수에게는 1억9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보라호 개발을 주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시험비행에 대비해 가입한 1인당 3억원 한도의 보험을 통해 보상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의 동생 명원(明媛·여·49)씨는 “사학연금은 오빠가 절반을 부담해 퇴직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유족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명예와 거금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우와 지금처럼만 살 수 있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책사업을 수행하다 발생한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별도로 보상해 줄 법적 근거가 없는 게 현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유족에게 국가적 보상을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항공대 관계자도 “외형상 학교가 참여하고는 있으나 두 교수가 개인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인지라 학교 차원의 보상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30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두 교수의 유족과 제자들이 지키고 있을 뿐 일반 조문객의 발길은 뜸했다. 일부 조문객은 이날 영결식이 진행되는 줄 알고 찾아왔다가 장례 절차와 미비한 보상대책 때문에 연기된 사실을 알고 씁쓸히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관련기사 조선일보 200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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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성훈, 장상진 기자] “믿어지지 않는다. 전에도 보라호로 몇 번 비행을 했다. 9월 2일 공개행사를 앞두고 시험 비행을 한다고 했는데….”
27일 낮 소형비행기 ‘보라’호를 시험 운항하다 추락 사망한 한국항공대 황명신(黃明信·52) 교수의 부인 김경희씨는 빈소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황 교수와 함께 시험비행 도중 숨진 은희봉(殷熙鳳·47) 교수의 제자 김동원(항공대 4년)씨는 “학생들 지도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제자들이 직접 제작한 비행기의 시험비행도 도맡아 오셨다”고 말했다.
숨진 두 교수는 민간 항공기 개발 분야의 개척자. 두 교수는 지난 1993년부터 민간 경비행기 개발에 줄곧 참여해 성능 시험 비행을 해왔다. 이들은 조종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 가운데 민간 항공기의 시험 비행을 수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1997년부터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인연을 맺고 연구원이 개발한 8인승 쌍발복합기의 시험비행을 담당했으며, 반디호와 보라호 등의 시험비행을 진행해 왔다.

이번에 사고가 난 보라호는 ‘전진익기(前進翼機)’라는 새로운 기술을 민간 소형비행기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던 만큼 두 교수의 보라호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함께 보라호 개발에 참여한 항공우주연구원 이종원 박사는 “10년 넘게 소형비행기를 함께 개발하면서 두 교수님과 친형제처럼 지내왔다”며 “두 교수님들이 보라호 처녀 비행에 성공한 후 기뻐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4년여에 걸쳐 개발한 보라호는 지난 6월 19일 처녀 비행에 성공했고 다음달 2일 일반 공개에 앞서 이날 최종 시험 비행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또 지난 번 시험 비행시에는 “기체 이상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었다”고 친구들은 말했다.
은 교수의 지도학생 박욱제(35)씨는 “연구도 늘 성실하셨으며 성능 테스트도 비행기를 몰며 직접 하셨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제자
문정호(25·석사과정)씨는 “황 교수님은 안정성 등 비행기 성능을 공학적으로 분석했고 보라호에 앞서 반디호를 시험 비행할 때는 연구실 인원 6명과 함께 날을 지샌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했다. 또 매년 한두 차례 경기도 고양시 불우 어린이들을 초청해 항공대학교가 보유한 세스나 비행기에 태우고 하늘을 구경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은 교수의 대학 동기인 한상길(47·대한항공)씨는 “은 교수는 79년 항공대 항공운항과 졸업 당시 과 수석을 차지했을 정도로 학구적이었다”며 “비행도 무척 잘해 비행시간이 1만 시간이 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파일럿”이라고 말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고양시 국립암센터에 마련된 빈소에 화환을 보냈고, 오명(吳明) 과기부 장관도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한국항공대는 두 교수의 영결식을 오는 30일 학교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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